봉황송에 기대어
봉황송에 기대어
  • 최운숙 수필가
  • 승인 2019.10.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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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운숙 수필가
최운숙 수필가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댔다. 고개를 돌리니 봉황송이 한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모습에 놀라 선뜻 나가지 못하고 엄지와 검지로 사진을 찍듯 나무의 반을 담아본다.

조심스레 앞으로 향한다. 가까울수록 나무는 깊고 무겁다. 노송에서 두어 발 떨어져 오른쪽으로 돌다 반대로 돈다. 마치 강강술래 하듯 천천히 나무를 돈다.

봉명동에 사백 년 된 소나무가 있어 이름을 봉황송이라 짓고 유래비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승용차에 올랐다.

평소 느슨한 성격이지만 홀린 듯 뛰어갈 때가 있다. 아마도 `이방주'라는 이름 석 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소나무는 붉은 비닐로 깐깐하게 몸을 단장하고 굽이쳐 올라온 줄기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마을을 수호하는 듯하다. 나무의 둘레와 가지, 잎의 조화가 수려하고 아름답다.

백봉산을 터로 삼았던 이곳은 도시개발로 인해 밀도 높은 주택이 들어섰고 소나무는 주택에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다.

깊숙하게 뿌리를 내렸으나 열악한 환경으로 성장이 느렸다. 그런 환경에서 오랜 세월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봉황송은 우람한 나무와는 다르게 번성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단속하고 자손과 잎을 줄였다. 그래서 나무의 가지는 복잡하지 않고 단조롭다. 단아한 아름다움이 봉명동을 밝히고 있다.

봉황송은 오래전 장원급제를 기념하여 심은 나무이니 기쁨이자 희망이다.

또한 마을의 안녕을 바라는 규율이기도 하다. 어쩌면 노송 그 자체만으로 질서가 될 것이다. 자손의 안녕을 바라고 마을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축원이 깊게 뿌리 내려 있을 것이다. 봉황송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

이제 봉황송 유래비 비문과 마주한다. <축 읽는 아이>란 수필집으로 심금을 울린 수필가 이방주 님이 지은 비문이다.

`산은 고을을 나누고 사람은 물길로 통한다….~~ 봉황송이란 이름은 비단에 꽃을 얹은 격이다' 비문의 일부다.

산은 마을의 경계가 되어 마을마다 조금씩 생활문화를 다르게 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은 산에서 발원한 물길을 따라 만나고 소통한다는 의미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소나무의 덕으로 풍요와 지혜가 연년세세 무궁하길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간절하게 담아 놓았다.

비문 앞에 오랫동안 서 있자 노인정 어르신들의 눈길이 내게 쏠린다. 내가 이방주 선생이 된 듯 우쭐해진다. 비문을 지은 수필가의 마음 위로 내 마음을 살짝 올려놓는다.

규율은 국가를 수호하고 민족사를 수호한다. 오래된 소나무는 우수한 병기를 바로 쓸 수 있도록 독려하는 정신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며 갖추어야 하는 정신, 가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마음, 그것이 나무의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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