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범이다!
내가 주범이다!
  • 박재명 충북도 농정국동물방역과장
  • 승인 2019.10.15 2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박재명 충북도 농정국동물방역과장
박재명 충북도 농정국동물방역과장

 

감염병이 전염하는 3요소는 원인체, 숙주, 그리고 전염매개체이다. 전염원이 최초에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든, 이 셋 중 한 가지만 차단하면 적어도 전염은 막을 수 있다. 작금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조치도 여기에 기초를 둔다. 원인체를 없애기 위해 소독을 하고, 숙주를 없애기 위해 살처분과 수매를 하고 있다. 전염매개체를 관리하기 위해 발생지역에 대한 차량과 사람과 가축·분뇨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가축 전염병의 3요소에 대한 대책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매개체 관리다. 가장 흔하게 지목되는 것이 축산차량이다. 그러므로 축산차량에 대해 거점소독소, 농장초소, 축산농가 문전소독과 자체 소독을 통해 4단계로 관리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 충북도에서는 진출차량 3단계 관리를 추가로 조치하고 있다. 농장에서 차량세척 소독, 농가초소에서 확인, 마지막으로 거점소독소에서 최종 소독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간 농장에 들어가는 차량만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는 차원이었다. 전염원의 유입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가정을 하는 자기반성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ASF가 발생하면 지역단위 공동 운명을 져야 하는 관계로 농가 스스로도 인식의 전환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간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량과 사람에게는 매우 엄격했지만, 스스로 오염원이 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은 성공한 셈이다.

차량 외에 농장 출입이 가장 빈번한 전염매개체는 또 무엇이 있을까? 들고양이, 까치, 쥐 등이 유력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농장 내부에서 축사 안에 있는 돼지까지 전파시키는 매개체는 과연 누구일까? 쥐가 아니라면 매개체는 바로 농장주와 관리인과 가족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부에서 농장으로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농장주 자신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외부요인은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농장주와 관리인은 엄격한 통제로부터 스스로 예외규정을 두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몇 해 전, 메르스 예방을 위한 첫 번째 예방수칙이 자주 손을 씻으라고 했다. 가장 쉬운 방역 수칙이 개인위생이었다. 가축방역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거의 외출을 하고 있진 않지만, 부득이 외출하고 왔다면 곧바로 축사에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외출 후 옷과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하며, 손을 씻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축사에 출입하는 전용 장화를 갈아 신어야 하며, 축사 출입 직전에는 장화를 2단계 소독해야 한다. 첫 번째 소독조에서 유기물을 제거하고, 두 번째 소독조에서 한 번 더 소독한다면 적어도 축주 또는 관리인 스스로가 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어렵지 않은 절차인데 쉽지가 않다. 습관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반드시 습관화해야 하는 것은 축산인들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농장 내부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들고양이, 멧돼지, 차량에 대한 대책도 중요하다. 야생동물이 넘어올 수 없는 구조의 울타리를 보강해야 할 것이고, 들어오는 차량, 사람에 대한 통제와 철저한 소독을 해 보자.

이번 기회에 가장 중요한 방역에 대한 관심에 순서를 바꾸어 보자. 내가 내 농장이 전염병을 들여놓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먼저 출발한 다음, 농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다른 매개체들을 합리적으로 의심해 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