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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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10.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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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고가의 빗소리가 고요를 깬다. 가을을 시샘이라도 하는 걸까. 가을 태풍으로 침침하고 흐릿한 하늘은 궂은비를 계속 뿌려놓는다. 기와지붕 위에는 새벽녘 호수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뿌옇게 내리꽂는 빗줄기, 장관을 이룬 빗줄기에 매료되어 넋을 놓은 채 괴산 홍범식 고가 뜰에 서 있다.

깨금발 들어 사랑채를 건너다본다. 댓돌 위에 신이 있으면 주인이 있다 했거늘, 덩그마니 쓸쓸한 빈 댓돌이 서글퍼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따닥따닥 쏟아지는 빗줄기는 마당을 흠뻑 적시고도 모자란 듯 내리고 또 내린다. 대쪽 같은 기개의 많은 선비가 쉼 없이 드나들던 체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사랑채, 수많은 사연을 품은 퇴색된 툇마루만 있을 뿐 누마루가 없는 소박한 사랑채다. 3·1운동 당시에는 지역주민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꾀하기도 하였다고 전하는 만세유적지 아니던가. 홍범식이 아들에게 남긴 유서 중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자꾸만 맴돈다.

격동의 시대가 극과 극으로 치닫게 한 그들의 삶, 삭이지 못한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랑채.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안채에 들어서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안채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아녀자를 위한 배려로 서너 발짝 들어서야만 비로소 너른 대청마루가 있는 안채를 볼 수 있는 구조는 절로 평온하다. 한 발짝 들어서서 뜨락에서 깨금발 들고 보면 사랑채가 보인다. 그 예전엔 담장 너머 사랑채 댓돌 위에 신발숫자를 보고 안채에서는 손님을 위한 식사준비를 했다고 하니 선조의 지혜가 엿보인다. 더욱더 놀라운 건 안채 안방문고리다. 문고리가 방안에만 설치돼 있지 밖에는 문고리가 없었다.

기다림의 미학일까. 기다림의 여유일까. 학식과 인품을 갖춘 가장으로써, 남편으로써도 안채에 들어서면 헛기침으로 자신이 방문한 사실을 알렸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면 들어서고, 문이 열리지 않으면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를 지닌 사내가 발길을 돌려 뒤돌아섰다고 한다. 안방마님의 수락이 있어야만 남편이 안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뿐더러 함부로 그 누구도 밖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있는 안채의 안방 문고리가 없는 이유다. 선비의 품격과 지조를 철저히 각성한 사랑채남편들 그 시대엔 그러했다고 하니 고결한 선비정신의 위상과 품격이 돋보였다.

진종일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커피로 얼룩진 종이컵처럼 뜰도 세월의 흔적을 지우기라도 하듯 빗물이 얼룩처럼 번진다. 어느 것 하나도 사연이 깃들지 않은 것이 있을까. 그중 세월이 흘렀음에도 반질반질한 문고리, 추운 겨울이면 문고리가 얼어 손으로 잡으면 쩍쩍 달라붙던 나의 시골집. 생전 어머닌 늦가을이면 방 문짝을 떼 한지를 바르고 문고리 옆에는 가을꽃으로 꽃 누르미로 장식을 하시면서 겨울준비를 하셨다. 아침 채광에 은은하게 피어나던 꽃 누르미, 그간 잊고 있었던 꽃 누르미가 슬며시 고개를 들고 여전히 시선은 고가문고리에 꽂혀 있다. 문틈으로 기구하지만 지혜롭고 슬기로운 여자의 일생이 비집고 나온다. 질곡 같은 삶의 고리 마디마디마다 사연을 옭아매고 고가의 희로애락이 서린 세월을 꾹꾹 품은 애증의 문고리. 아프다. 얼마나 많은 세월의 무늬를 새겨놓았을까.

처마에서 떨어지는 청아한 낙숫물, 불협화음을 일며 동그랗게 퍼지면서 튕겨 오르는 물방울에 빨려 들어가는 듯 시선을 떼지 못하고 안채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오도카니 바라본 너른 대청마루에 시원한 바람을 쐬며 한담을 나누는 여인들의 모습이 얼 비추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헛기침을 하며 서 있는 선비가 보인다. 아련하다. 눈길을 내려놓았다. 세월을 삭힌 빗물이 마당에 고이고, 잔잔하게 파문이 이는 얕게 파인 물웅덩이에 하늘빛이 짙게 내려앉는다. 안온하다. 그리고 초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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