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원
동물, 원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19.10.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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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저녁식사도 거른 채 늦은 시간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며, 자막과 장면, 감독과 출연자의 말이 연속적으로 머리를 드나든다. 배가고파 허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현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동물들이 카메라는 바라보는 모습, 갓 태어난 초롱이, 새끼를 떠나보내며 눈시울을 적시는 어미 점박이물범, 수술 중 숨을 거두는 박람이, 항공엑스포와 연이 되어 명명된 육중한 몸체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사람들의 손을 타는 앳된 모습이 오버랩 된다.

감독님 영화 제목 `동물원'이 아닌 왜 `동물, 원'인질 알겠습니다. 영어로 보통은 `ZOO'로 표기하는데 `Garden, Zoological`으로 되어 있네요. 일반인들의 관람대상인 동물을 전시하는 것이 아닌, 동물들의 정원, 동물들이 노니는 동산, 보금자리라 생각하면 되는 거죠? 가든이란 말 참으로 인상적인 표현인 듯합니다.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영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원이 아닌 정원, 누구에게나 마음 줄 곳이 필요하다. 쉬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들여 노동이 즐거움이 되고, 평온한 공간, 영화 속 공간은 열악하지만 같이 있는 사람 하나하나의 손길이 배려가 되는 따뜻한 보금자리다. 보살핌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필요한 것을 만들고 지켜보는 관계가 체화된 공간이다. 청주 `동물, 원'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를 안아 아내에게 보였다. 그렇게 인연이 된 조카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아이가 어른이 되어 직장을 얻으며 자라던 둥지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전 다른 보금자리를 트는 시간을 가졌다. 장성해서 식장을 들어가는 조카의 모습에 아버지, 엄마가 더욱 그리워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나에게는 몇 개의 정원이 있다. 그 하나의 정원에 가족이 모였다. 태어나 같이 살던 식구를 보내고 남은 가족들 간의 수다공간이다. 아이들 몇은 그네를 타고, 몇은 우물 뚜껑을 열어 소리를 내어보고, 몇은 집 앞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사이, 우리는 떠난 아이가 커 왔던 시간을 이야기를 한다. 오붓하게 모여 이야기 하는 순간은 어릴 적 동생들이다. 형이 무서웠던 동생들, 그런 동생들 옆에는 오랜 시간 같이해온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창밖 포도나무 줄기에 포도송이가 아닌 나비송이가 매달려 달콤한 날갯짓을 한다.

며칠사이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서 감이 촌년병 걸린 듯 볼그레 홍조를 띠더니 제법 익어 홍시가 되었다. 간혹 주근깨투성인 감이지만, 주렁주렁 달린 것들은 색을 달리하며 존재를 드러내는 사이, 여름 내내 몸집을 키우고 녹색을 더하며 무던히 참고 있던 국화가 꽃망울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때 늦은 태풍을 이겨낸, 다른 꽃들이 피는 시기에 편승하지 않고, 모두들 잎을 떨구는 시기에 홀연히 피울 태세이다. 아직은 녹색에 옅은 노란 점들이 점점이다.

내가 돌보는 정원은 멀리 있는 가족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보금자리다. 우리 형제들이 모여,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날이면 아버지 엄마도 우리와 함께 하실 거라, 쉽사리 돌보는 손을 놓을 수 없다. 촌스럽지만 가족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심고 보살피며 시간을 공유하는 정원인 것이다.

헤르만헤세의 몬타뇰라 정원,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타샤튜더의 정원 같이 너른, 세련된 정원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잔손으로 보살피는 정원이다.

며칠 있으면 아버지 기일이다. `아버지의 정원'을 찾아오는 날에 맞추어 옅은 노란색의 점들은 일제히 꽃을 피워 노란 동산이 되고, 술 한 잔 못하시는 아버지는 향에 거나하게 취해 우리형제를 온화하신 눈웃음으로 재잘거리는 우리 형제를 바라보실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정원'은 소중한 보금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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