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검찰 나무랄 자격있나
국회가 검찰 나무랄 자격있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0.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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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벌어지는 두 집회는 자진 폐업한 국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향을 달리하는 두 집회를 두고 “대의정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고 평가했으나, 여야가 지지자들의 집회에 의지해 당세를 확장하려는 모습을 보면 광장이 국회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극명하게 갈린 여론이 거리에서 대립하는 모습은 해방 직후 벌어진 신탁통치 찬반논란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광장의 목소리를 국회로 수렴하려는 노력은커녕 지지층 선동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여야 대표들이 정례적으로 만나는 초월회의 지난 7일 간담회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불참했다. 문희상 의장과 여야 5당 대표가 합의한 `정치협상회의'가 11일 첫 모임을 갖고 출범했지만 이번에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보이콧 했다. 어느 때보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어렵게 마련된 소통의 자리들은 각각의 정략에 따라 무위로 돌아갔다. 정당정치의 실종은 국회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다.

최근 국감장에서 벌어진 막말 퍼레이드를 보면 국회의 방종이 한계를 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법사위원장은 상대 당 의원을 “웃기고 앉아있네. 병X 같은 게”라고 욕을 했다. 상대 당 여성의원에게 “야, 너 뭐라고 했어”라고 호통을 친 의원도 있었다. 자기들끼리만 막말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다.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장은 참고인으로 출석한 중소상인살리기협회장에게 막말을 날렸다. 참고인이 대기업의 횡포를 호소하며 수사에 소극적인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발언한 후 퇴장하자 “검찰개혁 또 나왔어? 또XX 같은 XX들”이라고 조롱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의원은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다 죽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한국당 출신이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달라는 유권자의 눈물의 호소를 위로는 못할망정 욕설로 모욕한 것은 행패나 다름없다.

막말을 한 의원들의 윤리위 회부를 놓고 벌어지는 공방은 더 슬픈 코미디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현재 해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20대 들어와 윤리특위를 상설기구에서 비상설기구로 격하했다. 비상설 상임위는 6개월에 한 번씩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는 지난 7월 말로 끝나는 활동기간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처리한 실적이 없어 식물특위 소리를 듣던 윤리위였다. 스스로 정화하겠다며 만든 윤리위를 제 손으로 닫아버리고는, 윤리위 회부를 하느니 마느니 정쟁을 벌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러니 국민소환제라도 조속히 시행하자는 여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투표로 국회의원을 파면할 수 있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국민 80% 이상이 찬성하는 만큼 유권자가 국회에 내린 명령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도입을 공약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취임 후 “파행을 일삼는 의원들을 솎아내는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할 때가 됐다”며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말 뿐이다. 현재 국회에는 5건의 국민소환제 법안이 발의돼 있다. 20대 국회 들어서도 3건이 발의됐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삼척동자도 안다. 국회의원 소환제를 발의한 의원은 “동료 의원들 눈치를 보면서 법안을 냈다”고 했다. 스스로 만든 윤리위까지 무력화시킨 의원들이 자신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소환제에 호의적일 리 없다.

법사위 국감에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검찰에 개혁과 성찰을 주문하기에 앞서 “요즘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국회가 검찰에 개혁을 촉구할 자격이 있느냐는 통렬한 반성으로 읽혀졌다. 자책과 자성이 이 의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언제 촛불과 태극기가 국회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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