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때의 이름이 잉근내군(仍斤內郡)인 괴산군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진 것은 조선 태종 13년(1413)이다. 소백산 자락의 충청도 내륙 깊숙이 자리한 괴산을 두고 조선 초기 공조판서를 지낸 조계생(趙啓生, 1363 ~ 1438) 은 “한줄기 물은 흰 비단 같이 흐르고, 사면의 산은 층층한 성 같이 둘렀다”라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기후가 차고 더운 것이 알맞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옛 글을 통해 괴산은 비록 바위암벽으로 된 산들 사이에 놓여 크게 농사지을 땅이나 큰 고을이 들어설 만한 대지(大地)는 없으나 나름으로는 제법 사람 살만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괴산에는 소백산맥의 높은 준령과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곳곳에 아름다운 산수를 이루어 산자수명한 명승지가 많다. 그중에서도 속리산 계곡과 청주 근방에서 발원하여 보은·괴산을 지나는 달천(達川) 중·상류 지역 100여 리 사이에는 괴산 고산구곡·갈은구곡·연하구곡·쌍계구곡·선유구곡·화양구곡과 청주 서계구곡·옥화구곡, 보은 낙우당구곡 등 옛날부터 산수풍광이 뛰어난 명승지가 즐비하다.
현재 괴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된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옛길은 1957년 괴산댐 건설로 생긴 길이다. 현재 물에 잠긴 호수에는 연하동(煙霞洞)이란 마을이 있었다. 마을 앞으로는 달천이 흐르고 섶다리나 돌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호수에 물이 차오르면서 마을은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고, 외부와 단절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나룻배를 타고 바깥 마을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가 그마저 여의치 못하자 호숫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산허리에 벼랑길을 만들어 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잘 정비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수십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걸어다녔던 길이다.
수월정(水月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이 유배생활을 할 때 거쳐 하던 곳이다. 노수신은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을사사화로 전남 순천에 유배를 갔다가 진도를 거쳐 1565년(명종 20)부터 1567년(선조 원년)까지 괴산에서 마지막 유배생활을 했다. 훗날 벼슬이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수월정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구성은 대청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방을 배치하였으며 전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두었다. 원래의 수월정은 노수신의 10대손인 노성도(盧性度, 1819~1893)가 노수신의 적소(謫所)가 위치해 있던 연하동(煙霞洞)에 1865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괴산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자 현재의 산막이(山幕洞)마을 서남쪽 언덕으로 이건(移建)하였다. 현재 수월정 앞마당에는 노성도가 노수신을 제사지내기 위해 제단을 만들고 세운 표석이 세워져 있다.
산막이마을이 있는 칠성면 사은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유배지였을 만큼 멀고 외진 곳이었다. 본래 경북 상주에 살고 있던 노성도(性度)는 조상의 유배지였던 괴산 달천을 찾아들었다가 산막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계곡의 수려한 풍광에 홀딱 빠져 이곳에 눌러앉았다. 그는 노수신 적소가 있던 마을을 연하동, 거처했던 집을 고쳐 지어 수월정이라 하였다. 그리고 비경지를 찾아 연하구곡을 설정하고 각 곡(曲)마다 정경(情景)을 읊은 연하구곡가를 남겼다. 지금은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일부만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채 전설 속의 절경이 되었다.
수월정은 정자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일반정자와는 다른 구조를 갖추고 있어 일반 정자건물과는 건축목적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수월정 입구에 세워진 노수신 유적비에 언급한 대로 연하구곡(煙霞九曲)의 경치 좋은 곳, 강 한가운데 섬이 있고 그곳에 초옥(草屋)으로 있었던 옛 수월정(水月亭)의 정취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유배지에서 기거한 집으로서는 현재 전하는 것이 거의 없어 유배지 건물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