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깨달으며
살며 깨달으며
  •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10.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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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맑은 가을 햇살이 이파리에 닿아 투명하게 속살까지 파고드는 따스함이 전해지는 날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좋은 날을 누릴 수 있도록 10월엔 연휴도 많았다. 그러나 정작 이 좋은 날을 쓸데없는 궁상을 떨다가 다 흘려버리고는 스스로 자책한다. 날이 좋아 서럽다면 누가 믿을까마는 좋아서 아까워서 보고만 있는 아이러니도 있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금자탑을 쌓아도 실제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한낱 뭉게구름인 것을 알면서도, 좋은 것이 주어질 때 미루며 잡지 않고 영원히 있을 줄 착각했던 경험이 얼마나 많았던가?

산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무한한 우주 안에서 주변의 영향으로 우연히 얻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그냥 주어진 것은 고마워할 줄 모르고 쉽게 버려지거나 금방 잊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의도나 노력에 의한 것과 실수나 실패를 통한 경험에 의한 삶의 조각들은 내 안에 깊이 박혀 나의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도전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또다시 일어서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장수를 하여 100년을 넘게 살아도 인간이 한 세대를 살면서 알고 깨닫고 가는 것은 얼만큼인가? 내 삶의 언저리에서 얻어지는 조각들을 가지고 퍼즐 맞추듯 내 삶을 짜 맞춰 보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은 더 많은 착오와 실패를 통하여 맞춰가고 있다.

어릴 때 나의 무의식 속에서 자리 잡았던 생각은 어른의 말씀엔 순종하고 화가 나도 참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살면서 넘어지면 안 되는 줄 알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실수는 부끄러운 것이니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얼굴이 빨개지고 굳어졌었다. 경쟁에서는 무조건 이기는 것이 선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살아보니 어른 또한 끊임없는 실패 속에서 함께 성장해가는 존재일 뿐임을 알았다. 화가 나면 우선은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었는지를 상대방에게 차분히 알리며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여야 서로가 이해할 수 있음을 알았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것,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며 성장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는 것, 때론 져주는 넉넉함이 이기는 기쁨보다 크다는 것, 바람이 불면 어느 정도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려주는 것이 꺾어지지 않는 삶의 지혜임을 몇 가지 부러뜨린 후에 깨닫게 되었다.

가을이 떠나기 전 후회 없도록 마주하러 나왔다. 선선한 바람과 빛나는 햇빛, 그리고 알록달록 귀여운 열매와 풍성한 먹이 앞에 신이 나 지저귀는 새 소리가 이 가을을 아주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잔잔한 가을 햇살을 머금으며 나무는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나 보다. 그동안 푸른색 잎으로 열매를 보호하며 감춰주던 싱싱했던 나뭇잎은 남은 생기를 열매에 아낌없이 전해주고 서서히 윤기를 잃어간다. 나뭇잎 뒤에 숨어서 익고 있던 열매들은 이제야 저마다 색과 모양과 향기로 자기만의 타고난 성향의 결실을 보고 자신을 드러냈다.

곧 기온이 더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면 나무는 마지막 정열을 품어낼 것이고, 잎들은 빨갛고 노랗게 단풍으로 마지막 불꽃을 피우리라. 그리고는 미련 없이 안녕을 고하리라. 삶의 지혜를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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