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가로등
시골 가로등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10.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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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가로등 밑에 섰다. 가로등 주위에는 한 무리의 나방 떼가 파닥이고 있다. 어찌 들어갔는지 가로등의 유리 속에는 수많은 나방 떼의 주검들이 시커멓게 박제되어 있다. 우리 집 앞의 가로등은 나와는 막역한 사이다. 신혼시절,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은은한 빛으로 나를 위로 해 주곤 했다.
요즘은 해가 지면 자동으로 켜지고 일출과 동시에 소등이 되지만 시골의 가로등은 어느 곳에 자리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는 스위치가 전등을 켜고 끌 수 있게끔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달렸었다. 벼나, 콩, 고추 따위의 곡식 옆에 자리한 가로등은 봄에서 가을까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했다. 곡식들도 충분히 잠을 자야 열매를 맺기 때문일 것이다.
시댁은 읍내에서 한참을 들어가 있는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어 문명의 혜택이 언제나 뒤늦게 찾아왔다. 내가 시댁에 남편을 따라 처음으로 인사를 하러 갈 때만 해도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이었다. 그때 남편은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시댁에 데려갔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나 돌멩이라도 밟을 때는 떨어질 것만 같아 남편의 웃옷을 얼마나 세게 움켜잡았는지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긴장을 한 탓에 붉게 칠했던 립스틱은 이미 다 빨아 먹은 후였고, 미용실에서 말아 올린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다리가 따끔거려 살펴보니 이곳저곳 길섶의 웃자란 마른 들풀들이 흔적을 남겨놓았다.
곡식을 모두 거둬들인 늦가을, 시댁 마을은 서산으로 넘어가는 주홍빛 노을 속에 잠기고 있었다. 텃밭 옆에 서 있던 가로등도 설익은 감귤색으로 반기는 듯했다. 며느리 재목이 온다는 소식에 시아버님은 해가 지기도 전부터 켜 놓으신 모양이었다. 쭈뼛쭈뼛, 남편을 가로등 밑으로 이끌었다. 그 밑에서 립스틱도 새로 바르고, 헝클어진 머리도 매만졌다. 기분 때문이었을까. 가로등 불빛을 받고 서 있는 남편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날 남편도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불그스레한 내 얼굴을 보고 반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도시에 서 있는 가로등을 보면 갖가지 모양으로 멋을 내고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가로등도 기능뿐만이 아닌 모양까지도 시대에 부흥하는 것이리라. 지금도 도시의 어두운 골목에서, 또는 세상 곳곳에서 가로등이 되어 자신의 빛을 주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즈막에 들어서 왜 이리 시골 가로등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시골 가로등을 닮은 사람이 그리운 것일 게다. 보이는 것만이 최고인 양 달려들다 죽어가는 수많은 나방을 보면서 우리도 저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밝진 않지만 은은한 빛으로 사람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품어주던 시골 가로등. 때로는 자신의 빛을 잠시 꺼줄 줄도 아는 그런 가로등 같은 사람이 그립다. 칠흑 같은 밤, 시골길을 걸어야 할 어떤 이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또 동네 어귀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느 어머니에게는 위안이 되어 주기도하고, 텃밭 옆에 볏가리를 쌓아 놓고 타작을 하는 날이면 든든한 일군이 되어 주던 시골 가로등의 듬직함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시댁으로 첫인사를 다녀오던 그날 밤, 오토바이에 탄 나는 갈 때와는 다르게 남편의 허리를 꽉 껴안고 있었다. 살가운 말 한마디 없었지만 어둡던 숲길을 무섭지 않게 만들어주던 든든한 남편의 등에서 아마도 시골 가로등 같은 따뜻함을 보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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