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양날의 검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10.0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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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옷장을 연다. 눈에 들어오는 옷이 없다. 걸려 있는 옷들을 보며 어떤 걸 입어야 할까 고민한다. 한참을 쑤석거려 골라 입고 나서는데 또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무엇을 신을지 망설이게 된다. 신발 사이를 오가던 눈길이 멈춘다. 이제야 외출준비가 끝났다.
차에 올라 운전대의 방향을 잡는 일로 이어진다. 약속장소로 가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머리에서는 재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깨어 있는 내내 선택을 강요받는다. 알게 모르게 살아가는 과정에서의 고민은 연속이다.
어떤 일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 생각에 지쳐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동전점을 치기도 한다. 앞면과 뒷면을 정한 뒤에 던져서 나오는 면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갈림길에서 한쪽을 택해야 할 때면 많은 생각이 앞을 가로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다 보면 시간만 흐르게 된다. 이렇듯 막연해지면 가끔 운에 기대고 싶어질 때도 있다.
인생에서 선택은 양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익(益)이 있으면 한쪽에서는 실(失)이 있는 법이다. 동시에 부드러운 날과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날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생긴다. 똑같은 칼날에 찔려도 곪아 상처가 깊어져 병이 되는 사람이 있고 약이 되어 딛고 일어서 도약하는 사람이 있다.
삶에 붙어사는 선택이라는 명제를 종일토록 따라다니는 스트레스가 있다. 단점과 장점을 가진 검이다. 단점으로는 두통을 동반하고 화를 가져온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망쳐 큰 병을 가져올 수도 있다. 끝까지 타협하지 못하면 부정적이 되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허물어뜨린다.
장점은 자신의 에너지로 만들면 제아무리 지독하더라도 풀이 죽는다. 오히려 몸에서는 이기기 위한 방어수단으로 코르티솔을 배출시킨다. 외부자극에 맞서 대항하도록 신체의 각 기관에 더 많은 혈액을 방출시켜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처음의 긴장감이 흥분으로 변하여 도전하게 만든다.
3년 전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내 실수로 상대방의 차가 많이 망가지고 내 차는 폐차를 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놀란 가슴으로 집에 돌아와 몸져누웠다. 한 시간 동안을 사고처리에 시달려 온통 머릿속이 엉켜 두통이 왔다. 경제적인 손실은 얼마인가. 걱정과 불안으로 가슴이 뜀박질해 댔다. 그이에게 무어라 해야 할지, 당장 출근이 염려되어 막막했다.
얼마를 누워 있자니 이런다고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렇게 가슴앓이 해봐야 병만 날것이었다.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오후에 가기로 했던 품바축제장을 갔다. 저녁에 그이와 맞닥뜨려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사고는 마음에서 밀어내고 분위기에 젖으려 애썼다.
여느 때라면 한동안 앓아누웠을 일이다. 병이 나지 않았으면 다행이었다. 소심한 성격에 걱정도 사서 하는 내게 이런 대담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날로 계속 찌르게 두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화가 깊어져 우울함에 갇혔으리라.
그때 나를 토닥인 건 긍정이었다. 선택은 사는 동안에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그 검을 어떤 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지금도 부정과 긍정 사이를 하루에도 수없이 오간다. 사용하기에 따라 득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을 늘 쥐고 산다. 이제는 그 검을 잘 쓸 만도 하건만 선택은 여전히 어렵다.
찻집에서 마실 차를 두고 머뭇거리고 있다. 이건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일터,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감미로운 카페라테의 짙은 유혹에 흠뻑 녹아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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