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클 워커
미러클 워커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9.10.09 1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헌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눈을 떴으니까, 그래서 좋아요”
개안 수술이라도 받은 것일까? 아니다. 올해 80이 넘으신 한 할머니께서 한글을 깨우치고 밝힌 소감이다. 한글 수업을 받는 게 좋으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눈이 안 보였던 것도 아닌데, 눈을 떴다니, 글을 배운 후 할머니는 하나하나 알아가는 모든 것이 즐겁고 아침에 눈을 뜨면 글을 배우러 학교에 오는 그 먼 등굣길이 설레고 벅차다고 눈물까지 지어 보이셨다.
글을 안다는 것, 문자의 세계로 입문하는 기쁨을 그보다 생생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오래전 본 영화 ‘미러클 워커(Miracle worker)’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인 ‘The Story of My Life’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다. 시각, 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운동가가 된 헬렌 켈러와 그녀를 헌신적으로 가르친 설리번 선생의 얘기를 그린 작품으로, 1962년 개봉한 후로 1979년과 2000년 두 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다.
어릴 적 열병을 앓은 뒤로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아가 된 헬렌 켈러. 가족들은 이런 헬렌이 가엽다며 감싸주기만 할 뿐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난 헬렌은 손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먹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결국 가정교사를 들여 헬렌의 교육을 맡기기로 결정했고, 헬렌은 선생님 애니 설리번을 만나게 된다. 헬렌의 식사 예절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던 헬렌은 예절 배우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설리번은 그런 헬렌을 설득하고, 몸으로 부딪치며 가르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실제로 영화 속의 그 장면은 아주 길게 그려졌고, 헬렌과 설리반이 얼마나 처절하게 싸우는지 전투적이어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긴 전쟁 끝에 결국 식사예절을 가르친 설리번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문자를 가르치려 시도한다. 모든 사물을 만져가며 알파벳을 가르친 것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드디어 문자를 터득한 헬렌이 감격스럽게 외치는 알파벳 W, A, T, E, R, 그리고 그것의 의미 Warer! 손으로 만지고 있는 그 물체에 이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물체의 이름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대부분 사람들은 이 장면을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설리번은 부모가 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문자를 가르치려 했을까? 답은 영화 안 설리반의 대사에 있었다.
“네가 이것(문자)을 배우면 5천 년 전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고, 우주 경계까지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헬렌 켈러가 문자에 입문한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은 시청각장애인이었고, 독일어를 비롯한 5개 언어를 구사했으며, 다양한 사회운동을 이끈 리더였다.
문자의 힘, 잊고 살 때가 많다. 배움의 길이가 짧든 길든, 지금의 삶의 형식을 이끈 것은 문자의 힘이었다. 잊고 살았던 그 힘을 80이 넘은 만학도가 그리고 헬렌 켈러가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한글날, 우리에게 소리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엄청난 기적을 선물한 이, 세종대왕이 우리에게는 미러클 워커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