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리고 첼로와 함께하는 바흐 모음곡
가을 그리고 첼로와 함께하는 바흐 모음곡
  •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 승인 2019.10.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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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아침, 저녁으로는 찬기를 느끼고, 학교 잔디가 점차 누런색으로 변해가는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을날 오후이다. 파란 하늘, 낙엽, 바람 그리고 좋은 시, 좋은 음악 등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최고의 계절이다.

가을이란 아쉬운 계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는 역시 남성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첼로인 것 같다. 첼로는 현악기의 하나로, 비올론첼로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바이올린 계의 악기로서 활로 줄을 켜서 소리를 낸다. 줄은 4줄이며 구조는 다른 바이올린 계의 악기와 거의 같지만 훨씬 커서 의자에 앉아서 연주한다. 음 넓이는 바이올린보다 1옥타브 낮고, 현악기 중에서 음역이 가장 넓고, 침착하면서도 묵직하고 깊이 있는 음색을 갖고 있어 특히 바리톤 남성의 그윽한 노래와도 가장 닮은 것 같다.

첼로는 실내악이나 관현악에서뿐 아니라 독주에도 널리 쓰인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주로 낮은음의 주된 가락을 맡아 연주한다. 바흐 시대까지만 해도 첼로는 베이스 선율을 담당하는 저음 현악기로서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통주저음 악기로 인식되었다. 길게 지속되는 베이스 성부 위에 멜로디가 전개되는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악기는 주로 바이올린 같은 높은 음역의 악기들이었다. 그러나 1720년을 전후로 바흐는 `만년 조연'에 머물던 첼로를 전면에 내세운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통주저음이나 앙상블을 이루는 일체의 악기를 배제한 채, 오직 한 대의 첼로만으로 모음곡을 구상한 것은 그 아이디어만으로도 이미 파격적이었다.

뛰어난 첼로 음악 작품으로는 바흐의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베토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나타와 브람스의 첼로소나타 그리고 드보르자크, 슈만, 하이든, 생상, 코다이 등의 첼로 협주곡이 있다. 20세기의 뛰어난 첼로 연주자로는 카잘스, 로스트로포비치 등이 있다. 1717~1723년 사이에 쾨텐에서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섯 곡의 `무반주 첼로 모음'은 독주 악기로서 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위대한 작품이자 첼로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여섯 개의 모음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바흐는 첼로 독주만으로 곡을 끌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하나의 멜로디 단편을 여러 음역에서 나오게 한다거나 중음주법을 사용해 멜로디와 화음을 동시에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다.

실제로 커피 선전 배경음악으로 잘 알려진 모음곡 1번의 프렐류드의 경우 선율이 주제인 동시에 펼친 화음의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처럼 독특하고 난해한 기교가 동원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듣는 이에게는 새롭고 다채로운 재미를 주었을지 몰라도 연주자에게는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작품이 되었다.

시원한 바람과 짙어가는 낙엽 속에서 우리 마음은 점점 가을의 멋짐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멋진 가을날엔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을 듣는 다던가 고독함을 지극히 느끼고 싶을 때는 브람스의 첼로를 들으며 가을비와 함께 외로움을 달래 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 비 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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