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송환 희망 장기수 15명…전남 출신 2명·광주 거주 2명
2차 송환 희망 장기수 15명…전남 출신 2명·광주 거주 2명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9.10.06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 거주 이두화·이광근…전남 출신 양원진·박정덕씨
양심수후원회 "인도주의 실천 다방면 송환 촉구 활동"



최근 광주에 살던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씨가 별세하면서 광주·전남 출신 비전향 장기수가 2명으로 줄었다.



전국에서 총 15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2차 북송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중 2명이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사단법인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에 따르면, 2차 송환 희망 비전향 장기수는 15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광주에 사는 장기수는 이두화(90·여)씨, 이광근(73)씨로 전해졌다. 전남에 본적지를 둔 장기수는 양원진(91)씨, 박정덕(90·여)씨다.



함경남도 함주군 출생인 이두화씨는 대학 3학년 때 한국전쟁을 만나 도당학교 강사로 전남 무안에 왔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에 가지 못했고, 휴전협정 체결 뒤 지리산에 들어갔다 1954년 봄 체포됐다.



국가경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광주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하다 지병 탓에 전향서를 쓰고 출소했다.



전향 철회를 선언하고 2차 송환을 신청했고, 나주에서 광주지역 한 요양병원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근씨는 평양시 소룡동에서 태어나 1967년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붙잡혀 1988년 12월까지 22년간 옥고를 치렀다.



사상 전향을 강요한 모진 고문에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했다. 사상전향제도·준법서약서가 1989년·2003년에 폐기된 만큼, 전향 철회 뒤 2차 송환을 신청했다.



이씨는 봉제업에 종사해왔고 광주 모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안군 지도읍에서 태어난 양원진씨도 목포 문태중학교를 졸업한 뒤 1945년 3월 일본에 강제 징용됐다 1946년 5월 귀국했다.



양씨는 무안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아버지를 따라 전북 지역에서 피신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입대했다.



1959년 간첩으로 남파, 신안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1988년 12월21일까지 옥살이를 했다.



장기수 전향 공작 과정에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성치 않은 양씨는 광주·서울 지역 경비업체, 수산물 가공공장 등지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보호감찰법에 따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고 주거 제한까지 받았다. 통일 운동을 펼치며 송환을 바라고 있다.



지병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는 박정덕씨는 곡성이 고향이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 일원으로 활약하다 1954년 국가경비법 위반 혐의로 붙잡혀 1959년 2월까지 수감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심수후원회는 전국 여러 단체와 연대해 다양한 송환 청원운동 등을 펼칠 방침이다.



양심수후원회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장기수 4명(서옥렬·김동수·김동섭·류기진)이 숨졌고, 남은 15명도 질환을 앓고 있다"며 "하루빨리 이들을 가족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신념의 고향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수 송환은 6·15공동선언 이행, 인도주의 실천, 남북관계 발전·자주 통일의 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송환 촉구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전했다.



양심수후원회는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을 고향에 보내는 작업을 추진한 바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