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報恩)의 계절
보은(報恩)의 계절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03 1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커즈와일은 자본주의에 따라 인류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무색하게도 우리는 자본을 필요한 실물이나 화폐의 기능이 아니라 오직 욕망의 도구로서 진화시키고 있다. 자본이 인간의 욕망으로 진화함으로써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고, 지성과 교양으로 인격을 양성하는 대학교마저 자본의 물결로 상업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일지라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신세계만은 상실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상적인 날씨, 이 눈부신 가을에 그대여 무엇을 더 바라는가? 잠시 눈을 돌려 자연을 보라. 잎새들이 곱게 물들어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오늘만이라도 고운 빛으로 사색하는 가슴을 가져보면 어떨까.
가을이 되니 왠지 모르게 숙연해진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감사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많은 사람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감사의 표현으로 시간 날 때마다 짬짬이 봉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참에 보은(報恩)에 관한 우화, 은혜 갚은 호랑이, 은혜 갚은 까치, 은혜 갚은 꿩, 은혜 갚은 제비, 등등을 들여다본다. 동물들은 은혜를 은혜로 갚는데, 사람들은 왜 은혜를 원수로 갚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사필귀정(事必歸正)과 인과응보(因果應報)란 말이 있다. 난 이 말을 믿는다. 내가 세상을 사는 자세나 행동의 결과가 현 세대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반드시 후대에 나타난다. 그러니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에 대해 슬퍼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다. 상대를 불편하게 했거나 아픔을 줬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곱절로 받게 된다.
나 또한 상대를 아프게 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은혜를 갚지 못해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의외로 나는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대한 고마움이 크다. 이노 우에 상, 히로세 마리코 상, 실비아, 첸, 링, 로디, 사도하라 쬬우 등 이 사람들은 내가 외국에서 생활할 때 정신적으로 도움을 많이 준 사람들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열심히 편지도 쓰고 국제 교류도 해야지 했던 마음은 한국에 발을 내디딘 지 얼마 가지 않아 묻혀버렸다. 날이 갈수록 바쁘다는 핑계로 답장마저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이젠 미안해서 연락조차 할 수 없다. 대신 받은 은혜를 다른 방법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최근에 대만 유학생에게 일주일에 한 번, 멘토를 하게 되었다. 평상시 마음은 있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와 인연이 된 것에 감사한다. 내가 받은 은혜를 일부 이 학생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미지수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추억 만들기를 할 계획이다.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부는데도 대청댐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조용한 찻집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업을 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친딸 자리를 청이가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삶의 자세는 유전적인 영향도 크지만, 환경적인 영향도 크다. 테느가 문학 작품은 종족과 환경,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비단 문학 작품뿐이겠는가. 우리의 삶 또한 한 시대의 작품과 같다. 도덕과 윤리가 상실되고 욕망으로 가득한 시대일수록 착하게 살아야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보다 못한 가치 없는 삶을 살아서야 하겠는가.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멋지게 살다가 갈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