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받는 봉사
점수 받는 봉사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9.10.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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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색바람이 분다. 가을을 싣고 오는 바람이다. 들판에선 다소곳이 고개 숙인 벼 이삭이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겨줄 그날을 위해 부지런히 알곡을 살찌우고 있다. 세상 근심 외면하고 묵묵히 영글어가는 들판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이맘 때쯤이면 참새 떼를 쫓기 위해 허름한 밀짚모자를 쓰고 양팔을 벌려 논 가운데에 서 있던 허수아비도 사라진 지 오래다. 허리를 굽혀 힘들게 낫으로 벼를 베던 농부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젠 농사도 기계화되어 벼를 베는 일부터 탈곡까지 할 수 있다. 농기계의 사용으로 뙤약볕에서 고생하던 농부들의 일손을 덜어주어 전보다 농사짓기가 수월해졌다니 다행한 일이다.
수확 철이면 농사를 짓는 분들이 일손이 모자라 쩔쩔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분들의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도시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시골을 찾아 농촌봉사활동을 하였다. 설령 돕는 일손이 어설펐을지라도 그들의 봉사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게다. 도시에서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겐 땀의 가치를 느끼는 인생의 참 경험이 되었을 것이고, 아름다운 추억과 보람도 느꼈을 것이다.   
나도 여고 시절에 학교에서 단체로 이루어진 봉사활동을 나간 적이 있었다. 시골에 살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낫질을 하다 손을 베어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하며 그분들의 감사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내우외환으로 온 나라가 혼란스런 가운데 대학 수시전형이 끝나고 수능일이 다가온다.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지만 요즘 화두가 되는 입시제도에 대해서 심각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대학시험을 치를 땐 오직 입학시험만으로 당락이 결정되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 이외에 스펙을 쌓는 일이 없었다. 아마 지금처럼 스펙이 입시를 좌우했다면 아마도 나는 대학에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입시 제도가 달라져야 하겠지만 스펙으로 인해 그 혜택이 소수 학생들에게만 주어진다면 그건 공정한 입시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전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생의 평균 봉사활동 시간이 139시간이며 400시간이 넘는 학생도 6명이나 된단다. 이는 하루 4시간씩 100일을 봉사한 꼴이라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떤 봉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도 신입생의 약 40%를 학종으로 뽑는다니 스펙 쌓기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취지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일손이 부족한 곳에 도움을 주고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인성교육을 중요시하는 차원에서 도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봉사가 점수로 환산되어 대학을 가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들 중에는 진정한 봉사를 한 학생들도 있으리라.
봉사란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일손이 모자라는 지역사회나 도움이 필요한 개인을 돕는 일이다. 우리 주위에는 노력, 교육, 재능, 상담, 의료,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 고 이태석 신부님은 오지의 나라 아프리카 남부의 수단 톤즈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다 병을 얻어 선종하셨다. 신부님의 봉사를 영화로 제작한 ‘울지 마 톤즈’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전해주었다.
입시를 위한 점수로 한몫을 한 봉사가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일부에게 혜택이 되는 입시제도를 개선하려고 교육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진지하게 논의하리라 믿고 싶다.
봉사에 인색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이제라도 주위를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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