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네 것
내 것이 아닌 네 것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19.10.01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그리 멀지 않은 시선 끝에 걸린 조금씩 움직이는 다홍색 뭉텅이. 무엇인가 기이한 움직임의 물체는 제자리에서 흔들릴 뿐이다. 당겨진 시선을 채운 것은 한 무더기의 나비. 무엇이 있건 데 저리 모여 있는 것인가. 간간이 흰 나비가 있긴 하지만, 주홍색 날개를 가진 나비들이 한 무더기로 무엇인가에 포섭된 상태다. 팔락여야 할 날갯짓은 너무나 촘촘히 모여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파르르 떨고 있는 상태. 호기심에 발길을 옮겨 가까이 다가갔지만 나비들은 날아가지 않고 하던 일에 몰두하고 있다. 파르르 떨고 있는 날갯짓, 머리에서 잘 뻗은 주둥이는 잘 익은 선홍색 감에 일제히 꽂고 있다. 새가 먼저 쪼아 껍질을 헤집어 놓은 터라 가녀린 나비의 대롱은 쉽게 단것과 교감하고 있다. 감나무 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행복한 초가을의 뜰을 만끽하고 있다. 쉼 없이 더듬이가 움직인다.
주말 아침 일찍, 늘 그렇듯 게으른 일상으로 제쳐 놓은 뜰 정리를 한다. 성글게 엉킨 인동초를 잘라내고, 길가로 너무 길게 뻗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 싶은 가지는 과감히 잘라 준다. 
‘안녕하세요? 가지 치는 시기인가요?’, ‘아닙니다. 가지가 꽉 차 속아주는 겁니다.’
‘저희 나무는 언제 가지를 치면 될까요?’ ‘그대로 겨울나고, 내년 봄이 오기 전에 하시면 될 듯하네요’
‘꼭 저희 빌라 뜰 같아요. 정말 좋네요.’, ‘혹시 저희 집 석류나무에 약을 치셨나요? 올해는 깍지벌레가 없네요.’, ‘글쎄요. 하하’, ‘아침 일찍 어디 가시나 봅니다. 잘 다녀오세요.’
인사를 마치고 하던 일을 하는 차에 ‘꼭 한번 얼굴 보면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감이 참 실하게 달렸네요. 일부러 나무를 밑으로 쳐지게 키우는 건가요? 왜 다 익은 포도는 안 따고 내버려 두는 거죠? 보고 즐기려는 건가요?’, ‘아!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면 지나가는 사람이 따기 힘들까 봐 밑으로 자라게 일부러 윗부분을 쳐 준겁니다. 포도는 제 몫이 아니라 새 몫이고요’지나가는 사람과의 농담 섞인 수작이다.
과육이 터질 듯 차고 제때 수확하지 않아 더욱 달달하게 익어가는 포도송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요깃거리이자 이야깃거리다. 직박구리가 쪼아대며 희열에 찬 소리를 내고, 곤줄박이, 멧새 등 다른 새들이 연이어 날아들어 포도송이를 놓고 만찬회를 열었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연신 짖어대는 새소리지만 입가에 미소를 만드는 행복한 소리다. 간혹 떨어진 포도에는 나비가 찬을 즐기고, 과육을 덜어낸 포도 껍데기에는 개미가 검은 띠 둘레를 만들고 따듯한 가을 햇볕을 즐기고 있다.
한낮이 넘어 뜰 밖에서 청소를 하던 순간, 여태껏 맞아 보지 못한 향이 머리에 든다. 코는 자연스레 향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건만, 아내도 너무 좋은 향이라며 무슨 향인지 묻지만 향의 출처를 찾지 못했다. 향의 진원지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던 중 눈을 황홀케 하는 처음 보는 자그마한 꽃 무더기를 보았다. 살구색에 가까운 여린 색으로 피운 꽃 무더기. 혹시나 싶어 나무 사이로 조심스레 눈을 감고 코를 밀었다. 그래 이 향이구나! 아들을 생각하며 심은, 아들이 좋아하게 된 금목서가 키를 키우기도 전에 꽃을 피운 것이다. 서향의 향은 천 리를 간다 하여 천리향이라 불리지만, 금목서의 향은 만 리를 간다 하여 만리향이라 불린다.
담이 없어 인상적이다라는 말, 서두르는 걸음을 멈추는 발길, 아침이면 여지없이 찾아드는 것들이 소소하지만 가득 채우는 소리이자 움직임이다.
잎이 색을 달리하고, 숨어 있던 것들이 여물어 가는 시간, 그간의 것을 거두어 들여 챙기는 것이 아니라 열어두고 내어주어 행복한 웃음을 갖는 시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