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09.3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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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내가 사는 동네에 노키즈 식당이 들어섰다. 동네 커뮤니티에서는 갑론을박으로 떠들썩했다. 아이들이 많은 동네에서 얼마나 잘되나 보자며 두고 보겠다는 측과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 때문에 식사시간이 힘들었다며 노키즈 식당을 반기는 측의 설전이었다. 결론은 그 식당은 여전히 성업 중이며 점심시간에는 줄을 설정도로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식당을 바라보면서 나의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당혹스러웠다. 새로운 식당이 생겼다는 말에 가보고 싶었던 나는 아이를 동반할 수 없음에 화가 났었다. 그럼에도 아이가 없을 때 그 식당이 먼저 떠올린 나의 모습은 매우 이중적이었다. 내 사고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가장 최근의 모습이었다. 나름 공정한 척과 중립적인 사람임내 하고 살았던 내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나는 노키즈 식당이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노키즈 식당에 다른 단어를 대입하여 생각하면 우리 안에 숨겨진 많은 차별이 눈에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해준 책이 바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지음, 창비·2019)이다. 난민이 일으키는 일부의 사건으로 모든 난민 수용을 반대하고, 911테러로 인해 이슬람교인들은 잠재적 테러 용의자로 생각하는 등 우리가 서 있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인류애적인 평등함과 공정성을 이야기하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듯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연구하는 사람이다. 혐오표현관련 토론회에서 저자는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우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흔히 나 자신을 낮추는 말로 많이 쓰는 그런 표현을 말이다. 토론회가 끝나고 참석자가 저자에게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왜 썼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그 질문에 저자는 ‘장애’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의식조차 못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사건이 저자가 이 책을 낸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나도 수없이 썼던 표현이다. “난 결정장애야! 선택을 못 하겠어.” 우유부단한 나를 두고 한 표현이었으며 장애를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내 의식 저변에는 장애는 불편하고 도와 주워야 하는 그런 뜻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량한 차별들은 너무나 많다. 차별할 의도는 하나도 없었다. 선의였다. 그럼에도 그 말에 상처받고 차별받은 사람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무의식 속에 있던 나의 날 선 선량함이 누군가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을 것이다.
양성평등을 강조할 때도, 다문화 가족을 사회에 융합시켜야 한다고 할 때도 우리가 내거는 슬로건은 ‘함께’이다. 한쪽 편 다른 한쪽 편을 무한히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어서고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어야 한다. 우리의 선량함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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