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가 키운 불공정
'피의사실 공표'가 키운 불공정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9.29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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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 종사자가 피의자 혐의내용을 기소 전에 공개하면 처벌을 받는다. 형법이 규정한 ‘피의사실 공표죄’다. 3년 이하 징역형까지 가능하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형사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헌법 27조)’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구현하는 장치이다. 구체적으로는 피의자가 인권을 침해당하고 피의사실 공개로 받게 될 불이익을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1953년 형법에 장착됐다. 그런데 6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죄로 기소돼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실상 사망한 법조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개와 누설이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이제는 사법처리 하겠다고 나서는 자체가 어색해졌기 때문이다. 국민의 알권리와 상충하지만, 그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조국 법무장관이 자택을 압수수색 중이던 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놓고 벌어진 여야의 공방전이 그렇다. 이 통화의 공개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느냐, 아니냐는 논쟁은 피의사실 공표죄의 한계를 규정하기가 녹녹찮음을 보여준다. 여당은 검찰이 야당과 내통하고 있다고 분노하지만, 법무장관의 부적절한 처신이 법의 보호를 받아 숨겨지는 것을 알권리 침해로 보는 국민도 적지않을 것이다. 불법적으로 공개된 피의사실을 대중에 알림으로써 피의사실 공표죄를 완성하는 언론이 처벌 대상이 되지않는 점도 법이 사장된 요인 중 하나다. 정치권에서 가끔 피의사실 공표죄를 들어 검·경을 질책하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정파의 이해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보니 제대로된 논의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
피의사실 공표의 가장 큰 문제는 일방성에 있다. 수사기관의 일방적 공표로 끝날 뿐 해당 피의자가 변론이나 해명을 할 기회는 아예 주어지지 않거나 제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66년 전의 입법 취지도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하는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일방적 언론 플레이로 유죄 예단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지금도 정치인이나 재벌, 고위관료 등 유력자들은 언론의 협조(?)를 받아가며 검찰에서 제기된 피의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해명한다. 드러난 피의사실의 약점을 파고들어 반격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검찰은 지금 역사상 가장 막강한 피의자를 상대하고 있다. 자신의 인사권을 틀어쥔 현직 법무장관의 가족이다. 청와대와 집권당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수십만 촛불이 호위대로 나섰다. 법무장관 일가에 연루된 피의사실들은 전방위적 반론과 역공에 추레해졌고 대검찰청 청사 앞에는 역풍이 몰아치고 있다. 피의사실 유출의 피해자가 피의자가 아닌 검찰이 되고만 모양새다.
돈 없고 백 없는 숱한 피의자들은 수사기관에서 일방적인 피의사실이 유출돼 언론에 보도돼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상대는 자신을 수사하는 슈퍼 갑이다. 고소는 고사하고 항변도 못한다. 피의사실 공표죄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조국 장관처럼 공개된 피의사실을 무력화 할 수 있는 막강한 방패를 소유한 사람을 위해 발효돼야 할 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반세기 넘게 이어온 검찰의 관행이 법무장관 가족이 피의자가 되고나서 돌연 한시바삐 척결해야 할 패악으로 대두된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조국 장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피의사실 공표 논란에서 새삼 확인된 것은 하나다. 피의사실 공표죄의 사문화가 또 다른 차별과 불공정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피의사실 유출로 수세에 몰린 모든 피의자들에게 조국 장관 가족에 버금가는 변론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들에게 언론 접촉권을 적극 허용하고 언론에 피의자의 반론 게재를 강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피의사실 공표죄를 되살리는 것은 그 다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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