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영원한 거리
청주의 영원한 거리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9.09.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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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가혹했던 여름 햇살이 누그러졌다. 몇 달 동안 기세등등하게 시비를 걸어오던 풀하고의 싸움도 시시해졌다. 오랜만에 도시 음식을 맛보려고 청주시내로 나갔다. 산골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시내가 낯설다. 남편과 처음 만났던 성안 길을 느긋하게 걸어본다.
청주 시내 한가운데 자리한 청주읍성을 연결하는 큰길이 지금의 성안길이다. 성안 길은 오래전 공민왕이 납셨고 일제의 군홧발이 걸었고 민초들이 짚신과 고무신을 신고 종종거렸던 길이다. 할아버지가 걸었고 아버지가 걸어온 길, 내가 청바지를 입고 청춘의 한때를 걸었었다.
청주읍성 남문이 있던 현 국민은행 남문지점을 기점으로 북쪽과 남쪽 구역으로 나뉜다. 북쪽 구역에는 옛 청원군청, 청주우체국, 각종 시중은행 등이 있고, 남쪽 구역에는 백화점, 영화관, 커피전문점, 패션의류상점, 패스트푸드점 등이 있는 번화가이다. 남문로, 북문로, 서문동 등 현재까지 남아있는 지명은 옛 지명 그대로 성의 문이 있던 명칭이다.
성안길은 청주의 명동이었다. 이 성안길 흥업백화점 앞에서 남편을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다. 우리가 자주 갔던 지금은 없어진 장글제과점, 카페 여울목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함박스테이크도 그때 이 거리 어느 레스토랑에서 처음 먹어본 음식이다. 한 때는 맥칼없이 성안 길을 돌아다녔다. 오가다 보면 매일 마주치는 사람도 있었다.
성안 길을 걷다 보면 바닥에 그려진 청주읍성지도가 눈에 띈다. 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 자연스럽게 청주읍성이 보인다. 성안 길 중앙에서 서쪽으로는 중앙공원이 있고 동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국보 41호 철당간을 볼 수 있다. 옛 유적지를 발견하며 걷다 보면, 천 년 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는 듯하다. 참으로 오랜 세월 역사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이 거리는 푸르게 성장했다. 정치, 행정, 군사, 사회적 중심역할을 했던 거리, 그러나 지금은 패션, 문화, 역사의 거리로 거듭났다.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은 성안 길엔 오늘도 젊음이 넘치고 생동감으로 오가는 이들을 기분 좋게 한다.
누구에게나 살아오면서 잊지 못할 추억의 음악과 맛과 장소가 있다. 나도 큰아이 입덧할 때 어렸을 때 먹었던 공원당 우동이 너무나 먹고 싶어 경기도에서 청주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오가며 먹었다. 중앙공원 호떡도 꼭 먹어야 하는 필수코스였다. 이 거리가 나에게는 젊음이다.
어느 도시에 살든 다 그들 나름의 추억이 있는 곳이 있다. 청주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무심천과 성안 길은 향수며 추억의 장소일 것이다. 변화도 좋지만, 예전에 먹었던 음식점이나 커피숍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환원시켜주는 것은 생의 활력을 주는 일이다. 성안길을 걷는 사람들과 풍경은 바뀌었어도 길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 이 거리를 누비는 청춘들도 먼 훗날 나처럼 한때를 추억하며 걸어볼 것이다. 개발도 좋지만, 옛것을 보존하는 것도 변화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백화점 앞에서, 커피를 마셨던 카페 언저리 어디쯤,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더듬어본다.
중앙공원 은행나무 아래 앉았다. 오랜 세월 이 자리에서 청주를 지켜주는 은행나무처럼 성안 길은 청주의 영원한 거리다. 공원 호떡 하나씩 들어야 제대로 된 풍경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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