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강적들
이웃집 강적들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09.26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독도 상공에서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공군기 30여 대가 뒤얽혔다. 3시간 동안이나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영토에서 열강들끼리 세력 다툼을 벌였다. 청일. 러일 전쟁이 터졌던 구한말 때 일이다.
지난번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토를 두 차례나 침범했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사전 통보 없이 진입해 우리 전투기가 차단 기동에 나섰는데도 보란 듯이 영공까지 침범했고, 경고사격을 받고 한 번 빠져나갔다가 20분 뒤 다시 영공에 들어왔다. 러시아 국방부는 독도 영공 침범을 부인하면서 우리 군의 경고사격을 ‘공중 난동’이라고 했다. 홍콩 언론은 중국 군사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번 사건이 한국에 “미. 중 분쟁에서 미국 편을 들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 러가 손발을 맞춘 계획된 도발이 아니겠는가. 다른 나라 주권침해를 장난삼아 저질러 놓고도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대놓고 조롱한 것이다. 청일. 러일 전쟁이 터졌던 구한말 때와 등장하는 국가까지 똑같다. ‘나의 적은 나의 친구고, 나의 적의 친구는 나의 적이라는 말도 다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믿고 있던 우리의 혈맹인 우방 미국이 “중, 러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지지한다”면서도 어느 나라 영공인지 밝히지 않은 것도 우리로선 개운치 않다.
어제는 농장에 닭 6마리가 난도 당하는 수난의 날이었다. 이곳저곳 닭털이 난무한데 뼈며 살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딴에는 고양이 짓이거니 추측을 해 보지만 그도 확실치가 않다. 누구 짓일까. 아무리 샅샅이 둘러봐도 비가 내린 탓인가 발자국을 발견할 수가 없다. 고양이는 그 자리서 사체를 먹어치운다. 사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물고 갔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살쾡이나 족제비가 아닐까 싶다. 이들 침입자를 막고자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뱀과 고양이, 족제비, 멧돼지가 싫어하는 꽃으로 봉선화, 당귀, 메리골드를 심음으로써 운치 있는 농장 가꾸기와 친환경차원에서 일거이득의 효과를 올렸다.
농장에서 500미터 거리에 외딴집이 있다. 마침 그 집에 발바리 두 마리가 있는데 종종 농장에 와서 놀고 있으므로 그동안 안심했었다. 고양이와 개는 앙숙이다. 족제비며 멧돼지 또한 개와 서로 상종 않는 극과 극의 천적관계이니 토끼며 닭을 보호해주는 고마운 개들이다.
농장 앞으로 청주 충주 간 자동차 전용도로 신설공사가 한창이다. 포크레인과 불도저,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연실 땅을 파고 밀고 메꾸는 작업으로 북적댄다. 이 공사가 완공되면 음성서 50분 거리의 청주를 30분이면 갈 수 있다니 20분이나 단축되는 획기적인 공사이다.
농장의 참사를 바라보며 쓰린 마음을 달래고 있는 내게 공사장에서 일하던 포크레인 기사가 다가와 하는 말 “어제 발바리 두 마리가 닭을 심하게 쫓던 것 같던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까. 강아지들이 농장을 지켜주어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양이도 살쾡이도 족제비도 아닌 발발이 들이었다니……. 그렇게 믿고 신뢰했던 발발이들에게 당한 배신의 충격은 너무 컸다.
한반도정세의 운전대를 잡고 한·미·일과 북. 중·러가 대치하는 낡은 냉전 구도를 무너뜨리겠다고 대통령은 말했었다. 우리를 뿌듯하게 한 이 말의 성찬이 주변 국가들엔 한·미·일 체제 이탈 선언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중·러로 하여금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라는 급소를 치고 들어오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중·러의 영공 침해에 대해선 단 한마디 말이 없었다. 안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나는 왜 닭 6마리를 잃고도 외딴집 발발이 주인에게 이렇다저렇다 한마디 못하고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