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가 사는 법
벌새가 사는 법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9.2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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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벌새가 공중에서 정체비행을 한다. 마치 정지하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없는 날갯짓을 하는 중이다. 날개가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빠른 속도로 날개를 쉼 없이 친다. 사람들의 눈에는 멈추어 긴 부리를 꽃에다 박고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이다.

벌과 같이 꿀을 먹고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장 작은 녀석은 몸이 5㎝에 몸무게는 2g이다. 어떤 조류보다도 비행능력이 우수하여 지상에 안주하지 않는다. 벌새는 1초에 90번의 날개를 퍼덕인다. 4년이라는 짧은 수명에도 평생 뛰는 심장박동 수는 80년을 사는 코끼리와 맘먹는다. 이토록 애처로운 비행은 작은 몸으로 지상에 널린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끊임없는 비행을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꽃에서 꽃을 옮겨 다니며 제 몸무게만큼의 꿀을 먹는다. 하루에 천 송이의 꽃을 찾아다녀야 하는 고단한 생이다.

어느 날, TV에서 다큐로 “벌새의 신비”를 보았다. 요즘 영화인 “벌새”가 뜨면서 머릿속에 가라앉아있던 장면이 기억의 수면위로 부상(浮上)한다. 보는 내내 고된 삶의 방식이 딱했다. 끊임없이 날개를 저으며 살아가는 새를 보면서 수없이 발버둥을 치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고였었다.

따로이던 둘이 가정의 울타리로 하나가 되어 행복을 꿈꾸었다. 가족은 둘로 시작하여 셋이 되었다. 꿈일 뿐 현실은 냉혹하여 경제적인 사슬이 옥죄어왔다. 초부터 녹록지 않은 살림에 혼자의 힘으로는 벗어나 지지가 않았다. 그이는 남이 보기에 겉으로 허울 좋은 사람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에겐 한량이었다.

무던히도 밀려오던 밀물은 왜 그리 버겁던지. 밀물로 온 성난 파도는 썰물로 가야 하건만 계속 밀려오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쓰러지지 않기 위해 물을 향해 끝없이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강으로 흘러가 방황의 섬에 표류하게 될 테니까.

어쩌면 날기 위한 날갯짓을 퍼덕이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스무 해를 버둥거려 지친 내 몸이 깡말라 쓰러지려 할 때, 힘들어 포기할 때쯤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신의 한 수가 보인다. 그이의 한량생활이 끝을 냈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을 하여 신성한 땀의 대가를 보여주고 있으니 희망적이다.

비로소 나를 옭아맨 끄나풀이 풀리기 시작한다. 두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켤 만큼 느슨해진 사슬이다. 내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낸 내게 참아서 이런 날이 온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쩌면 사슬이 있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긴 시간 동안 참아낸 인내는 앞으로 살아갈 삶에 더 씩씩하게 나를 세우리라.

인터넷을 보다 벌새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안데스 산의 숲에 불이 났다. 모두들 불을 피해 자기의 살길을 찾아 달아났을 때 작은 부리로 물 한 방울을 물어 나르는 새가 있었다고 한다. 왜 떠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내가 해야 할 몫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벌새는 그곳 숲의 주인으로 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떠올린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디를 가든 주인 노릇을 하며 살라는 뜻이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도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새긴다.

작고 또 작은 몸으로 우주의 비밀을 한몸에 간직한 채 열정적으로 치열히 살아가는 새. 죽는 순간까지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새. 벌새가 사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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