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100m 전
학교 앞 100m 전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 승인 2019.09.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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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평소보다 늦은 퇴근, 어둑한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실 소파에 털썩 몸을 던진다. 어라, 출근하면서 분명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던 앉은뱅이책상이 가운데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다. 조그만 책상 위에 날개처럼 활짝 펼쳐진 희멀건 종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한다.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고지서다. 종이 색깔만큼 머릿속이 하얘진다. 늘 다니던 길에서 법규 위반이 웬 말이냐는 남편의 꼼꼼한 잔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짚이는 데가 있다. 지난주 토요일,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내내 신경이 쓰였다. 주말만큼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출근하듯 이른 시간 눈이 떠졌다.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침대 위에 뭉그적거리면서도 머릿속은 사무실에 두고 온 일거리로 가득했다. 결국 건성으로 세수만 하고 잡히는 대로 옷을 입고는 출근길에 나섰다.

주말 아침 느지막한 출근길 운전이란 식은 죽 먹기다. 익숙함을 넘어 습관처럼 핸들을 꺾고 페달을 밟는다. 유유자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데 순간 `띵띵띵띵' 내비게이션의 알림이 다급하다. 화들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뿔싸! 이미 늦었다.

출근길에 반드시 지나게 되는 이곳은 길하나 사이에 두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각각 자리해 있다. 다른 학교 앞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30㎞ 이하로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본능처럼 눈이 계기판으로 향한다. 재빨리 확인한 계기판의 숫자는 40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 이렇게 천천히 달렸는데 위반이라니, 제한 속도가 너무 낮은 것 아냐? 불평 섞인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문득 아침마다 북적이던 길가 풍경이 떠오른다. 아이들 수다로 시끌벅적한 길을 지날 때면 내비게이션 경고 알림이 울리기 전에 절로 속도를 줄이게 된다. 주말 아침 한적한 모습에 그만 정신줄을 놓았나 보다. 이젠 상황을 판단하는 순발력이 떨어지나 싶어 괜스레 씁쓸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오늘 아침도 변함없는 출근길이다.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진 아침 공기의 상쾌한 유혹에 넘어가 창문을 내리고 출발한다. 학교 앞 100m 전, 고지서 효과인지 가속페달을 밟던 발에 힘이 빠진다. 오른쪽으로 천천히 굽은 길을 도는 데 열어둔 창문 너머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수행평가 망한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나도”하면서 까르르 웃음꽃이 만발이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어깨가 축 처져 있던 꼬마 녀석은 등굣길을 따라나선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방울토마토를 참새처럼 받아먹는다. 지켜주고 싶은 예쁜 풍경이다.

지난달 `도로교통안전특별회계법'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교통범칙금을 교통시설 개선, 교육 등 교통안전 증진에 전액 활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걷힌 범칙금은 정부의 일반회계로 편입되어 적재적소에 안배하는 시스템이 없다고 한다. 교통범칙금 규모는 매년 증가하는데 교통안전시설 등에 필요한 예산 확보와 여건은 악화일로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이들의 안전이 예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예산 확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안전 속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가 아이들을 위해 쓰이면 아깝지 않겠다. 학교 앞 가득한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지켜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오늘따라 건널목에 우직하니 휘날리는 시니어클럽 어르신의 노란 깃발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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