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벨의 실험
조슈아 벨의 실험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1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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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단순한 연주자의 범주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음악가로 대접받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조슈아 벨(Joshua Bell). 미국 국적인 그는 4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블루밍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정도로 일찌감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조슈아 벨이 연주자가 아닌 음악가로서 인정받는 것은 클래식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연주는 물론 음악교육과 음악감독 등 폭넓은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슈아 벨은 마흔 살이 되던 2007년 놀라운 이벤트를 벌여 세상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 한복판인 그 해 1월 12일, 조슈아 벨은 미국 워싱턴 랑팡플라자 지하철역에서 홀로 연주를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칭송을 받는 그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거리의 악사가 되어 연주를 한 것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하철역에서 그가 연주한 시간은 45분인데, 사용한 악기는 350만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40억 원대에 달하는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그가 연주할 때 그곳 워싱턴 랑팡플라자 지하철역을 지나던 사람들은 엄청난 귀 호강을 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는 전혀 빗나갔다. 그 45분 동안 잠시라도 서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의 연주를 들은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고, 그가 발밑에 준비한 구걸함에 동전 한 닢이라도 던져 놓은 사람은 27명뿐 이었다. 모금된 돈은 불과 32달러.

이 돈은 조슈아 벨이 제대로 된 연주회장에서 연주할 경우 한 사람 어치의 입장권도 살 수 없는 돈이다.

조슈아 벨의 이런 깜짝 이벤트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가식과 허세에 휩싸인 예술 취향,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는 차별적 본능과 예술의 본질 등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습관처럼 KBS 클래식FM에 채널을 맞춰놓고 산다. 혼자 있거나 홀로 걸을 때 늘 클래식FM을 듣는다. 그렇다고 내가 클래식에 해박하거나, 격조 있는 곡을 선별해서 들을 수 있을 만큼의 귀 명창이 아님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나는 클래식 음악의 작곡가 정도만 아주 쬐끔 구분할 뿐 일일이 곡명을 외우거나 작곡자 또는 연주자를 기억하려는 노력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단지 편안하고 수려한 선율이 귀를 통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는 좋은 기억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거리의 악사로 나선 조슈아 벨의 연주에 감동하면서 뜻밖의 행운에 감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조건이 있다. 우선 남루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의 악사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해도 그가 연주하고 있는 악기가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임을 알고 있다면 호기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날 조슈아 벨이 지하철역에서 연주한 6곡 가운데 단 한 곡이라도 알고 있거나, 자신에게 특별한 사연이 있는 곡이며,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겉모습이 아니라 조슈아 벨의 연주임을 알 수 있는 훈련된 청각이 있을 경우도 필요충분조건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인간은 예고된 상태를 통해서만 비로소 본질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다.

독주이거나 협연일지라도 그 공연이 천재성을 인정받은 조슈아 벨의 연주회라는 사전 약속을 통해 잘 차려입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의식하며, 비싼 입장권을 구입하는 자본적 속성을 거쳐야만 (조슈아 벨의)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조슈아 벨의 탓일 수는 없다. 거기에는 차별하고 차이를 확인하고 싶은 자본과 신분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과 다름 아니다.

쓸쓸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평화로운 추석연휴를 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있는데, 세상은 앞다퉈 머리를 삭발하며 시끄럽기 그지없다.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 앞으로의 일을 `시작'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중략>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방식을 `잊는' 것, 즉 이전 방식에 `종지부를 찍는 일”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기억하라. 우리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과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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