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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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9.09.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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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큰집이란 말이 정겹다. 넉넉한 품성의 형님 내외가 그 뜻 안에 자리하고 계신다. 오늘날 분화되어가는 핵가족화의 풍경 속에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드문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만의 가족사가 따뜻한 느낌이다.

세상이 변화된 즈음이다. 각자 바쁘게 살다가 명절날 모인다는 일이 어쩌면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거기다가 함께여서 번거롭고 불편한 일들이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이렇게 형제들이 모인다는 자체만으로도 탐스런 포도송이에 비교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시리라. 옹기종기 한자리에 모여서 부모님을 기억하며 각자 남은 생의 우애를 나누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흐뭇하실까.

서로 다투지 않고 순간의 만남을 귀히 여기며 돌아서는 우리들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살아생전 부모님께서 원하셨던 뜻을 받드는 일이 이런 모습이지 싶다.

나를 비롯해서 다른 동서들은 모두 작은 집이라 불리 운다.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형제로 나누어지는 호칭 속에 섞인 그 말은 들을수록 거리가 가까워서 좋다.

그런데 오늘날의 변화한 세태는 그마저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어서 아쉽다. 흘러가는 세대인 우리에겐 여럿의 형제가 있어 사촌이라는 관계도 있지만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대부분 자녀가 딸이든 아들이든 한둘에 그치게 되니 자연적 큰집과 작은집이라는 호칭도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순의 나이에 들어서서야 형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 많은 형제를 단 하루라도 거느린다는 자체가 마음의 아량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는 요즘의 명절풍경을 보고서야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전에는 썩 달갑지 않았었다. 나 불편한 것만 생각했다. 이제 나이를 먹은 탓인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알았다고나 할까. 내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그 어떤 묵시적인 것을 터득한 셈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새로운 풍속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명절 음식을 대행해서 마련하거나 아니면 집이 아닌 휴양지에서 명절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들 한다.

저마다 사정이 있을 테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 시댁과는 거리가 멀다. 내 주장은 불편해도 그만큼 형제가 한자리에 모여 화목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형님이 편하고 좋다. 이나마도 이렇게 큰집에 가는 횟수가 앞으로 얼마 정도가 될 것인지.

명절을 보내고 돌아와서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나 자신도 새삼스런 일이었다.

`형님 대가족 거느리며 명절 치르느라 고생하셨어요. 고마웠어요.' `아니야, 다들 모이게 되어 좋았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형님의 목소리가 오히려 더 밝게 들려온다.

그 너그러운 모습이 바로 큰집이었다. 이번 명절을 계기로 작은 집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짚어 본다.

그날 큰집의 식탁 위에 놓였던 소담스런 포도가 내내 가슴 깊이 달콤한 맛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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