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제주도가 사라진다는데
매년 제주도가 사라진다는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9.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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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98명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가 1명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 통계다. 합계 출산율 0점대는 홍콩이 한 차례 기록한 전례가 있을 뿐 지금까지 한국이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상식적으로 여성 1명이 남성과 결혼해 2명을 낳아야 현재 인구를 유지할 수가 있다. 1명에도 미달하는 합계 출산율은 가파른 인구 감소세가 목전에 닥쳤음을 알리는 경고장에 다름아니다.

통계청은 이미 오는 2029년부터 사망자가 출생자를 초과해 실질적인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출산율은 이 우울한 시발점을 앞당길 공산이 높다. 인구학자들은 30년 후인 2050년 인구 감소가 정점에 달해 매년 제주도가 하나씩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때가 되면 제주도 인구인 67만명 정도가 매년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충북의 인구(160만명)가 없어지는 데는 채 3년이 걸리지 않는다. 학자들은 현재의 저조한 출산율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경우 이런 사태를 피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올해 혼인 통계가 지난해보다 감소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내년에 합계 출산율 세계최저 기록을 스스로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인구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9월 수도권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전국 평균보다도 한참 떨어진 0.76명에 불과하다. 지방보다 현저히 낮은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꾸준히 증가해 마침내 과반을 달성한 이유는 삼척동자도 안다. 지방에서 사력을 다해 생산한 인구가 수도권에 흡수돼 지역 간 불균형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반세기를 이어온 탓이다. 2050년께부터 닥칠 인구 재앙은 취약한 지방부터 잠식해 들어갈 터이고, 종국에 대한민국은 잡초밭에 둘러싸인 서울·인천·경기로 쪼그라들지도 모른다.

합계 출산율 0점대 추락과 수도권 인구의 과반 돌파는 국가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자 사활을 걸고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두 문제 모두 합당한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해법을 내놓을 능력이 없는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정치권은 법무장관 사태에 매몰돼 시선조차 돌리지 못하는 형국이다.

수도권 인구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비교적 낮은 수준의 증가세를 보인 시기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이다. 세종시가 조성돼 부처가 이전하고 10개 혁신도시가 틀을 잡아가던 때였다. 노무현 정부의 과감한 수도권 분산정책이 열매를 맺던 시점이었다. 정책의 단절과 함께 수도권 비만증은 재발했다. 세종시의 출산율은 1.57명으로 서울의 2배를 넘는다. 공무원이 많아 고용안정성이 높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도시를 계획할 때부터 주택공급과 유아돌봄 등 공적 기능을 높여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 주거비용을 낮춘 것이 주효했다고 봐야 한다. 인구감소와 수도권 과포화는 혁명적 정책이 추진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임을 시사한 대목들이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치솟는 청년실업률, 천정부지의 집값과 사교육비, 성불평등 등이 출산율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더 절실한 과제는 출산세대에 `자식이 나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기득권이 공고해지면서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사라지고 부와 권력에 이어 기회까지 세습되는 시대를 마주한 젊은 세대에 희망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출산율을 반등시킬 수 없다.

고달픈 인생이 대물림될 사회를 경계하는 젊은이들은 지금 믿었던 도끼에 발등까지 찍힌 심정이다. 그들의 절박한 항변조차 달래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인구 재앙을 재촉하는 시곗바늘 소리만 들릴 뿐이다. 누구보다 청와대가 “설마가 사람 잡을 것”이라는 인구학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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