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 옛말... 갈수록 주문량 '뚝뚝'
문전성시 옛말... 갈수록 주문량 '뚝뚝'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9.10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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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전통시장 떡집 가보니 …
민족 대명절 불구 불황 탓 고향 찾는 자녀 감소
반말서 1~2㎏ … 차례상 올릴 한 접시만 구매도
증평 진흥떡집 방앗간 운영 이상구·홍선희 부부
“복닥복닥 온 가족이 송편 빚던 어린시절 그리워”
증평읍 진흥떡집 방앗간 안주인 홍선희씨(왼쪽)와 여동생 미희씨가 송편을 빚고 있다. /김금란 기자
증평읍 진흥떡집 방앗간 안주인 홍선희씨(왼쪽)와 여동생 미희씨가 송편을 빚고 있다. /김금란 기자

 

추석이 다가오면 동네 아낙들은 새벽부터 서둘러 길을 나선다.

똬리 위에 수북이 담긴 소쿠리를 얹고 산길도 지척인 양 방앗간을 향했다.

외지에 나간 자식들 입에 넣어줄 송편 빚을 쌀이 한 톨이라도 도망갈까 발걸음을 재촉했던 시절이었다.

방앗간에 줄지어 늘어진 소쿠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남의 집 쌀과 바뀔까 눈도장을 찍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옛날 명절은 그랬다.

세월이 흘러도 추석의 정취는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문전성시를 이루던 떡집은 이제 옛말이 됐다.

증평 장날인 지난 6일 시장통에 위치한 진흥떡집 방앗간(증평군 증평읍 윗장뜰길)을 찾았다.

대원전기에서 평생 근무하다 일을 그만두고 5년 전 문을 연 이 집의 주인장은 이상구(61)·홍선희(58) 부부다. 4년 전 서울에서 내려온 홍선희씨의 여동생 홍미희씨(57)도 떡집 일을 돕고 있었다.

옥천군 이원면이 고향인 이상구씨와 청주시 가경동 발산리가 고향인 홍선희씨는 나무지게를 둘러메고 나무하러 다니던 기억을 떠올릴 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부부의 기억 속엔 대가족 속에서 복닥복닥 거리며 송편도 빚고 추석 빔으로 고무신을 받고 동네방네 자랑하며 다니던 정겨운 추석이 남아 있었다. 요즘은 떡집을 운영하면서 가족의 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부부는 봄에 직접 채취한 쑥과 옥천에서 동생이 농사지은 호박, 자색 고구마로 오색 빛깔 송편을 만든다.

새벽 3~4시에 시작되는 고된 떡집 일이지만 자식 입에 넣을 음식을 만들듯 정성스레 떡을 만드니 단골도 많다.

하지만 떡집을 한 해 두 해 운영하면서 명절이 무서워졌다.

보통 명절 한 달 전부터 떡을 주문하는 예약자가 밀려드는데 불황 탓인지 떡 주문이 갈수록 줄기 때문이다.

이상구 사장은 “시골 사는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내려와야 먹이고 싸줄 것을 생각해 떡을 많이 맞추고 주문한다”며 “집에서 떡을 만드는 것은 고사하고 가족들이 모이지 않으니 떡을 한 말하던 사람은 반말하고, 반말하던 사람은 1~2킬로만 하고, 아예 차례 때 쓸 한 접시만 사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2~3년 전만 해도 추석이 다가오면 떡집 벽면에는 주문 종이가 꽉 찰 만큼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올해는 명절을 일주일 앞두고도 주문 종이는 10여 장에 불과했다.

떡집 안주인 홍선희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집에서 송편을 빚겠다고 쌀을 빻아가기도 했는데 올해는 한 명도 없다”며 “단골 어르신들이 버스 시간 기다린다고 들르고 떡 맞춘다고 찾아오고 떡집이 사랑방이었는데 요즘은 거의 없어 아쉬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시골 어르신들은 바쁜 농사철과 추석이 겹쳐 자식에게 줄 떡을 못 맞출까 봐 명절 한 달 전에 떡집에 예약해 놓고 자식을 목 빼고 기다렸다”며 “떡을 반말하던 어르신들도 자식이 안 내려온다고 하면 먹을 사람 없다고 떡을 안 맞추고, 제사도 1년에 한 번 지내는 세상이니 이젠 떡도 옛날 세대 얘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금란기자
silk8015@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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