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두려운 시대
명절이 두려운 시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9.1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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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고향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시절이 있었다.

동구 밖 너머 고목처럼 고향엔 부모가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것인지 사람이 변한 것인지 고향에 대한 아련함도, 부모에 대한 애틋함도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기성세대에게 명절은 쉼이자 휴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명절은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런 이유로 명절에도 부모와 친척과 대면하지 않는 오롯이 혼자 보내고 싶어하는 혼족시대가 됐다.

나홀로 족이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커지며 1인과 경제(이코노미)를 합친 일코노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생긴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밥(혼자 밥 먹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공(혼자 공연보기), 혼행(혼자 여행가기)이 시대 트렌드가 되면서 명절은 챙기자니 부담스럽고 안 챙기자니 찝찝한 존재가 됐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남녀 2835명을 대상으로 추석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복수응답)를 했다.

조사 결과 5명 중 1명은 혼추족(홀로 추석을 보내는 사람)으로 나타났다.

혼추족 가운데 취업 여부를 따져보면 취업준비생이 28.0%로 가장 높았고, 이어 직장인(20.2%), 대학생(12.7%) 순이었다.

결혼 여부에 따른 응답을 보면 미혼 응답자 중 혼자 추석을 보내겠다는 답변은 21.3%로 기혼자(3.3%)에 비해 7배가량 응답률이 높았다.

추석을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혼자 보내고 싶다'는 응답이 친인척을 앞섰다. 조사결과 1위는 부모님 등 직계가족(45.5%)이 차지했다. 2위는 친구, 연인(37.0%), 3위는 나혼자(28.8%), 4위는 친·인척(19.8%)으로 집계됐다.

올 추석 친지모임에 참석할 예정인지를 묻는 질문에 취업준비생 53.4%, 직장인 48.4%가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친지들과의 만남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39.4%)가 1위로 꼽았다. 이어 현재 나의 상황이 자랑스럽지 못해서(26.8%), 평소 왕래가 없어서(21.5%)라고 답했다.

고향 가는 기차표를 끊기 위해 밤새 줄을 서고, 귀성행렬로 고속도로에서 반나절을 보내던 시절도 이젠 먼지 쌓인 앨범에 모셔둬야 할 아날로그 추억이 됐다.

추석을 1주일 앞두고 증평 읍내 전통시장 안에 있는 떡집을 찾았다. 떡집 사장 왈 명절이 다가와도 떡 주문이 줄어 힘들다고 한숨을 내쉰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고 내년은 더 걱정이라고. 그래도 떡집은 명절이 대목 아니냐는 질문에 떡을 먹어 줄 자식들이 고향을 내려오지 않으니 덩달아 떡 주문도 많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몇 해만 해도 명절 한 달 전부터 떡 주문이 밀려 예약표가 한 쪽 벽을 채웠지만 지금은 떡 줄 부모 마음은 그대로인데 정작 먹어줄 자식들이 오지 않으니 떡집도 불경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엔 고향에 가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였는데 지금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수십 가지다. 취업준비생은 직장이 없어서, 미혼자는 결혼을 못해서, 직장인은 일이 바빠서, 학생은 시험 때문에 고향을 찾지 않는다. 부모는 직장이 없어도, 결혼을 못해도, 가난해도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절을 애타게 기다린다. 올 추석에는 혼추족 생각은 잠시 접고 외로이 차례상 준비하는 부모를 떠올린다면 고향 가는 발걸음이 그래도 가볍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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