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나일까?
누가 진짜 나일까?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9.08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나는 대체로 바쁘다. 아니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잘 나가는 연예인급'으로 바쁘다며 숨은 쉬고 사냐는 안부를 곧잘 듣는 편이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돈 되는 일 없이 바쁘다. 보따리장수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업을 하니 그럴 것이다. 시간이 날 때면 강의를 들으러 다니거나 먼 거리를 마다하고 공부하러 가곤 한다. 이러다 보니 가끔 내가 두 명이면 좋겠다는 시답잖은 상상을 하곤 한다. 문득, 며칠 전에 읽은 그림책이 생각나 다시 들추어본다.

1인칭 시점으로 과거부터 회상하듯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자비에'그는 젊은 시절 넘치는 열정으로 지칠 줄 모르고 일하던 사람이다. 공장에서 부품 수량을 계산하는 일을 맡은 자비에는 바빴지만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더 피곤해진 자비에는 주말에도, 급기야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회사에 남아 일을 계속하는, 마치 커다란 기계의 부품처럼 살아간다. 자비에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회사의 요구에 시지푸스의 바위를 옮기듯이 반복된 버거운 일상을 산다.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회사의 로고를 왼쪽 가슴에 붙이고 무표정으로.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수족관 속 물고기가 다 죽어 있었다.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친구 만날 시간도. 영화관 갈 시간도, 심지어 엄마의 안부를 물을 시간도 없다는 것을. 이것을 계기로 자비에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회사 사장에게 말하지만, 사장은 명함 한 장을 주며 이곳에 가면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자비에가 찾아간 곳은 꼭 미용실 같았다. `DUPLEX'간판이 붙은 문을 열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더운물이 가득한 욕조에 맨몸으로 들어가 있었다. 피로가 풀리며 잠시 잠들었을 뿐인데 일어나보니 자비에가 두 명이 되었다. 완벽한 자비에의 복제 인간이 있었다. 사장은 복제 인간이 생겼으니 회사를 그만둘 필요가 없다며 계속 업무 강도를 높인다. 복제 인간은 자비에의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청소부터 개를 산책시키거나 공과금 납부, 엄마에게 안부 전화, 심지어 대신 여자친구를 만나 즐기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자비에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복제 인간이 대신하고 자비에는 회사의 부품이 되어 끊임없이 일만 종용받는다.

가끔 우리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압도되어 일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림책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인 무표정하며 같은 옷을 입고 있고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득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고 공장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이 떠올랐다. 획일성과 일반성만이 강조되던 시대, 분초까지 따져가며 시간에 맞춰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고 마는 시대, 자본가는 성실과 부지런함을 포장해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고유한 개성은 말살한다.

누가 진짜 나일까? 은유와 상징이 난무하는 그림책 이야기를 작은 지면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기계적 삶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비에 에게 인간 소외의 경험은 다시 예전의 만족한 삶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주객이 전도되는 작금에서 다시 한번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화두를 가슴에 던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