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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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9.09.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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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까?

매년 8월마다 돌아오는 페르세우스 유성우, 며칠 전부터 두 딸과 친구와 함께 천문대에 가려고 기대에 차 있었는데 구름이 너무 두껍다.

기상 위성 영상으로 구름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확인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정보를 확인하며 가능성의 실마리라도 찾아내려 애를 쓴다. 몇 분 후에 다시 본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 구름 영상의 움직임을 보고 또 본다. 올해는 못 보고 지나는 것인가, 마음 깊은 곳에 조바심까지 자란다.

초단기일기예보 영상에서 촘촘한 레오파드 무늬 같은 구름대가 북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조금 엷은 구름대가 지날 확률이 있었다.

“미친 짓 한번 해 볼까?”

단순히 드라이브로 끝날 수도 있지만, 희미한 가능성이 있다. 친구도 같은 맘이다. 둘이 바로 출발했다.

이런 하늘에 유성우를 볼 생각을 한 건 정말 미친 짓이었는지, 장미산 정상엔 아무도 없었다. 돗자리를 펴고 대자로 누우니 천문대 옥상뿐 아니라 온 세상을 독차지한 듯하다. 친구는 카메라부터 설치하느라 바쁘고, 나는 누워서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하며 흔들리는 별들을 이어 방향을 가려보았다. 마주 보는 하늘은 동쪽이다. 오늘 별똥별 딱 두 개만 본다면 좋겠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구름이 뭉글뭉글 움직이며 하늘로 난 깊은 우물에 빠지듯 힘없이 사그라지고, 그 자리에 희미한 별이 도드라져 나왔다. 두툼한 목화 솜이불에 싸인 듯했던 동쪽 하늘에 둥그렇게 검은 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별똥별은 딱 두 개 봤다는 도시 아가씨랑 둘이 누워 도란도란 그녀가 찍은 사진 속 카시오페이아를 함께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불꽃이 폭발하듯 밝게 커졌다가 꼬리를 끌며 급히 사라지는 빛, 무서울 정도로 갑자기 밝아지는 별똥별이었다. 저절로 숨이 멈추어지는 순간, 둘이 동시에 확실히 보았다. 조용한 환호가 온몸을 흔들었다. 그런데 너무 순식간이어서 소원을 빌지 못했다.

여름밤이 한가로이 깊어갔다. 간절한 손님에게 호의를 베풀 듯 하늘은 점점 깨끗한 검은 쟁반에 더욱 반짝이는 별들을 담아 내오더니 자정이 넘자 총총하게 온 하늘 별들을 보여주었다. 벌레 소리, 새 소리, 고라니 소리가 여름것 같지 않은 선선한 바람에 실려 왔다. 별들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은하수가 쏟아지듯 흐르는 하늘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는 사이 별똥별은 가끔 길거나 짧은 획을 그어주었다.

벌써 다섯 개의 소원을 빌었다는 친구, 그동안 나는 한 개의 소원도 빌지 못했다. 처음엔 별똥별이 너무 순식간이어서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짧게 외칠 수 있게 소원 목록에 번호를 붙여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별똥별은 삶에서 기회와 같은가 보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꼬리가 길거나 짧거나, 심지어는 점과 같이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며, 정말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것이 마지막인지 또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떨어지지만, 누군가에게만 보인다. 고개 들어 올려다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그 무엇보다 구름이 두꺼운 하늘에도 포기하지 않고 가봐야 볼 수 있다. 그 여정에 기꺼이 동행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더없이 행운이다. 혼자서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동쪽 하늘 시퍼런 빛 속으로 어느새 별빛도 녹아들고, 주섬주섬 장미산을 내려오며 별똥별에 미처 부탁하지 못한 더 많은 소원이 생각났다. 내게 이렇게 많은 소망이 있었던가? 무심결에 감탄사와 함께 흘려보낸 별똥별 몇 개가 조금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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