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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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09.0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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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시행하며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 시민들이 “노(NO) 아베”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항의시위를 했다. 한·일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혐한(嫌韓)을 부추기는 보도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경향은 극우 인터넷 매체를 넘어 공중파나 주요 일간지에게까지 퍼지고 있다. “한국을 `악인'으로 하는 감정적인 해석보도를 그만두라”는 일본 시민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편,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며칠 전 `나카하타 만노 센류(仲畑流万能川柳)'난에 “태풍도 일본 탓이라고 말할 것 같은 한국”이라는 센류(5·7·5의 17음으로 된 짧은 시)를 최우수작으로 소개했다. 이 난은 독자가 보내오는 센류를 매일 선별해 소개한다.

마이니치신문에는 `혐한'을 부채질하는 내용의 센류를, 그것도 `최우수작'으로 소개한 데 대한 항의가 잇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마이니치신문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혐한을 부추길 의도는 없었지만 `혐한을 부추긴다'라고 받아들이는 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관련 기사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센류. 일본에서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 중기 이후 에도(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유행한 5·7·5조의 17음 정형시다. 하이카이[俳諧]가 통속화하여 생겨난 마에쿠즈케[前句付:7·7음에 대해 5·7·5음을 붙여서 하나의 노래로 만들어 연결할 때의 착상의 묘미를 즐기는 일종의 언어유희]가 연결의 묘미보다 한 구 자체의 기발함을 추구하여 독립한 것이다. 인생의 한 단면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예리하게 찌르는 풍속시이자 생활시라 할 수 있다.

센류라는 명칭은 가라이 센류[柄井川柳]라는 작가가 이러한 풍조의 구를 전문적으로 다룬 데서 유래되었다. 하이쿠[俳句]와는 달리 기고[季語:계절을 상징하는 말]나 기레지[切字:구의 단락에 쓰여 운율을 맞추는 조사, 조동사] 같은 약속이 없고 인간의 삶 전반을 소재로 하며, 주로 구어를 사용한 간결함·해학성·기지·풍자·기발함이 특징적이다. 작자는 무명의 일반 서민으로, 문학사나 서민 언어의 자료로서도 귀중하다.

일본에 센류와 하이쿠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단장시조(單章時調)가 있다. 1979년에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두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한 손에 거머쥐었고 1987년에는 중앙일보 시조대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허일 시조시인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단장시조, 일도류(一刀流)의 하이쿠를!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일찍이 노산 이은상 스승께서 양장시조와 단장시조의 효시를 보인 바 있고,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강의하면서 와까(5.7.5.7.7)에서 초구(5.7.5)만으로 하이쿠라 이름하여, 산뜻한 사생주의 작풍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고 명쾌한 시로 이른바 그 하이쿠가 널리 사랑받는 엄연한 현실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에 비하건대 우리 시조의 종장(3.5,4.3)으로 빚는 단장시조야말로 정서적 그 시성에 있어 일본의 하이쿠나 센류를 월등 능가함에 어엿한 긍지를 느껴온바, 흔히 하이쿠야말로 정형률이 절대불변으로 알고들 있으나, 마쓰오 바쇼의 <파초>는 (8.7.5)로서 이를 지아마리라 하여 글자의 초과를 용인하고 있음은 우리 시조의 종장도 (3.8.4.4)를 허용하고 있음과 같다.

앞으로 한 층 더 품과 격을 아우른 우리 단장시조가 널리 애송되고 즐겨 지어짐으로써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될 날이 있음을 믿어 이에 과감히 고고의 성을 울린다. 단장시조를 지도하는 나로서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센류시 “태풍도 일본 탓이라고 말할 것 같은 한국”에 대해 나는 `대나무가 등나무에게'란 제목을 달고 “뒤틀린 너의 성품을 탓한들 무엇하랴”고 和答詩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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