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연가 3
탁구 연가 3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9.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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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조금만 밉보여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마음에 안 찬다고/ 가슴에 머리 처박는/ 날뛰는 야생마/ 준마가 되도록/ 길들이며 사는 거지/ 잠시만 곁눈질해도/ 여지없이 토라지고/ 수시로 변덕을 떨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는 응석받이/ 그래도 한세월/ 다독이며 사는 거지'

`탁구를 치며 5'입니다. 천방지축 날뛰는 어린아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탁구공입니다. 상대가 넣는 서브나 되받아치는 공을 잘못 받으면 원하는 대로 가지 않고 탁구대 밖으로 튕겨나가기도 하고, 네트에 처박혀 꼬꾸라지기도 하니까요.

작고 가벼워서 가냘프고 얌전하게 보이지만 탁구대 위에서 살아 움직일 때는 영 딴판이 되지요. 순식간에 왼쪽과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가 하면 회오리바람처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가 하면 갑자기 속도가 뚝 떨어져 오기도 해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조금만 딴전을 피우거나 곁눈질하면 여지없이 토라지고 변덕이 죽 끓듯 해 정신 바짝 차리고 예의주시하지 않으면 낭패를 봅니다. 게임 중에 수천수만 가지의 공격기술과 수비기술이 시도되고 발현되는 다이내믹한 운동이어서 내공을 키우지 않으면 천덕꾸러기가 되고 맙니다.

야생마가 조련사의 혹독한 조련을 받아 준마로 거듭나듯이 즐탁인이 되려면 그런 수련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공격할 때는 공격하고 수비할 때는 수비하는 멋진 즐탁인이 될 수 있습니다.



`움켜지려하지 마/ 손가락 사이로 물 빠지듯/ 움켜질수록 허망한 게/ 인생살이다/ 튀는 공 내게 온다고/ 붙잡아둘 수 없듯/ 되돌려주며 사는 거야/ 독불장군은 없어/ 세상살이/ 내가 못해도 재미없고/ 네가 못해도 재미없어/ 기울면 채워주고/ 모자라면 노력해서/ 균형을 맞추는 거야/ 어디/ 완전한 사랑 있다더냐/ 한평생 맞수가 되어/ 지지고 볶으며/ 이겼다 졌다 하는 게/ 바로 사랑이다'

`탁구를 치며 6'입니다. 그래요. 움켜쥐면 질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움켜쥔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듯 움켜질수록, 집착할수록 튕겨나가는 게 탁구이고 인생살이입니다.

움켜진 손을 펴서 공유와 베풂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상대가 보낸 공을 상대에게 되돌려 보내지 않으면 점수를 잃거나 패하는 게 탁구경기입니다. 오는 공 잡으려 하지 말고, 받는 즉시 되돌려 보내야 합니다.

받은 만큼 보내고 보낸 만큼 받는 게 탁구이고 인생사입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이란 없습니다. 사람 人자가 시사하듯 서로 기대고 돕고 돌보며 살아야 합니다. 상대가 못 쳐도 재미없고, 내가 못 쳐도 재미없는 게 탁구입니다. 연결되지 않고 끊겨서 주고받는 즐거움이나 팽팽한 긴장감과 묘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죠.

하여 탁구도 인생살이도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기울면 핸디를 받아서 균형을 맞추고, 열심히 노력해서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랑 없듯이 완전한 탁구도 없습니다. 좋아서 맺은 인연이든, 어찌하다 맺은 인연이든 인연은 모두 소중하고 귀합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으니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마주 보고서서 하나의 공을 주고받았으니 전혀 가볍지 않은 인연일 터. 자주 치는 이는 물론이거니와 탁장에서 우연히 만난 일회용 상대라 할지라도 함께한 인연에 감사해야 합니다.

`덕분에 즐탁했다'고, `덕분에 한 수 배워 고맙다'고 탁구공 주고받듯 덕담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아무튼 맞수가 되어 지지고 볶으며, 이겼다 졌다 하는 탁구가 최고의 즐탁이며, 그런 인연이 최고의 인연입니다. 지나고 보니 이겼다고 이긴 게 아니고, 졌다고 진 게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그랬고 탁구가 그랬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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