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 못했으면 사과도 혼자 해라
혼자 잘 못했으면 사과도 혼자 해라
  • 석재동 기자
  • 승인 2019.09.04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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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석재동 부장
석재동 부장

 

“군수 뒤에 서 있는 저 공무원들은 무슨 죄여.”

일본 정부를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상혁 보은군수의 지난달 30일 사과 기자회견을 언론을 통해 본 충북도민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물의를 빚은 사람은 군수인데 왜 군청 국·과장 4명이 함께 용서를 구하는 모양새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반감이었다.

사과하는 군수 뒤에 간부공무원들은 왜 서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정 군수의 지시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간부공무원 스스로 나선 것인가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관계없이 간부공무원들이 정 군수의 뒤에 선 행동은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정 군수가 지시했다면 그야말로 갑질의 전형이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간부공무원들이 스스로 함께 하기를 자청하는 호의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자 한 조직의 리더라면 정 군수는 마땅히 홀로 기자회견을 했어야 했다.

리더라 함은 힘든 일엔 언제나 솔선하고 좋은 일은 구성원들의 덕으로 돌리는 자세를 요구받는다. 한결같이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리더는 존경을 받고, 그 조직도 건강하게 발전한다. 반대로 힘든 일은 구성원에게 떠밀고, 좋은 일이 생기면 생색내기를 즐기는 리더라면 존경보다는 구성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조직이 건강할리는 만무하다. 건강하지 못한 조직은 항상 사건·사고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정 군수의 이번 기자회견은 외부에 조직구성원에게 힘든 일을 떠민 모양새로 비쳐졌다. 그래서 보은군청은 불안해 보인다. 조직이 건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정 군수로서는 10년 동안 고락을 함께한 공무원들이 함께한 사실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리 있는 조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으냐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말 하지 마라. 인사권자와 공무원 사이는 누가 뭐래도 남이다. 분명히 상명하복이 엄존하는 자유로운 관계 아닌 것도 서로 안다. 군수와 각별한 친분을 가진 공무원이 군청서열 맨 꼭대기에 있다면 그것도 문제다. 의리의 다른 이름이 `아부'가 될 수도 있다.

단체장자리는 그렇게 조심스럽고 어려운 자리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인 이순신 장군은 리더의 역할을 몸소 실천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칭송받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승첩의 장계에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부상한 장졸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접전할 때 군졸들 중에 본영 2호선의 진무 순천 수군 김봉수, 방답 1호선의 별군 광양 김두산, 여도 배의 격군이며 홍양 수군인 강필인…낙안 배의 사삿집 종 김말손, 거북선의 토병인 정춘… 등은 철환을 맞아 전사하였습니다”라는 식이다.

정작 장군은 장계와 난중일기에서 자신의 공훈을 기록하는 데는 매우 인색했다.

이순신 장군은 엄격한 신분제사회인 조선시대 최하층민인 종 출신의 장졸을 구국의 영웅 중 한 명으로 기록했다. 기록한 장군은 추앙받는 위인이 됐고, 기록된 장졸은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을 현재까지도 뭉클하게 하는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남았다.

충북도민들은 말한다. 정상혁 군수 혼자 잘 못했으면 사과 기자회견도 혼자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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