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산티페 vs 소크라테스
크산티페 vs 소크라테스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9.04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 공직자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러운 때에 크산티페(Xanthippe)와 소크라테스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의 부인으로 서양 최고의 악처로 소문난 여인이다. 크산티페는 잔소리가 심한 여인이었다. 걸핏하면 싸움을 거는 거친 성격에 잔소리와 불평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성질 더러운 여인으로 소문이 났다. 한 번은 알키비아데스라는 소크라테스의 동성 연인이 소크라테스에게 고급 케이크를 선물로 보낸 적이 있는데, 그걸 발로 밟아 짓뭉개버렸다고 한다. 질투심도 굉장한 편이었던 것 같다. 이런 크산티페를 서구인들은 몰지각하다고 비난한다.

크산티페는 악처였을까? 소크라테스의 평상시 삶을 재구성해보고 다시 생각해보자.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보다 3~40세 어리다. 소크라테스가 70세 때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제자들하고 이야기할 때 크산티페가 두 아들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는 30대 초중반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늙은이가 딸 또래 여인하고 살았다고 보면 된다.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의 결혼은 크산티페가 졸라서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원래 유복하고 가문 좋은 집안의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의 말솜씨에 반해서 그를 흠모하게 됐으며 그래서 결혼하자고 했다고 한다. 집요한 성격의 크산티페는 고집을 꺾지 않고 결혼을 한다.

소크라테스와 결혼을 작정한 때부터 크산티페의 비극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결혼식 첫날부터 신방에 들지 않았다. 피로연 좌석에서 사람들과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토론이 시작되어 밤새도록 대화를 이어간다. 다음 날에도 토론이 이어져 결국 3일이 지나서야 신방을 치렀다고 한다. 크산티페가 열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소크라테스는 늦은 아침에 광장(아고라)으로 출근해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부잣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을 먹으며 토론을 한다. 저녁 이후에는 술을 마시며 밤새도록 토론을 하다가 사람들이 나가떨어지면 뒷정리를 하고 새벽녘에 아고라에 나와 몇 시간씩 멍하니 있다가 사람들이 나오면 토론을 시작한다. 이런 생활을 몇 날 며칠 하면서 집에 안 들어간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일은? 그건 소크라테스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집에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목숨을 걸 뿐이다. 아이도 셋이나 낳아놓고 영혼을 돌보는 일에 매달려서 집안을 내팽개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무능력자라고 비난을 할 것이다.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엄마는 비난만 하고 말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유부남이면서 연애를 했다는 설도 있다. 뮈르토(Myrto)라는 과부와 따로 살림을 차렸다는 말도 있다. 어찌 바가지를 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가지도 긁고 포악도 떨며, 물바가지 세례도 했을 것이다. 크산티페를 이렇게 만든 건 소크라테스라고 봐야 한다.

크산티페가 악처일까? 그건 세상 사람들 이야기이다. 크산티페의 입장에 서면 소크라테스가 나쁜 놈이다. 그러면서도 크산티페는 도망가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쁜 놈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철학자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와 세상 사람들에게 악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소크라테스라는 남편과 같이 산 크산티페 중 누가 더 대단할까? 선택하기 어렵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인류를 돌볼 기회를 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는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사(私)와 공(公) 중 하나는 버리는 것이 좋다. 둘 다를 챙기려 하면 반드시 동티가 나게 되어 있다. 사(私)를 포기하는 고위층이 없는 게 우리나라의 비극이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