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9월
사람의 9월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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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인공의 불빛이 촘촘한 그물이 되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반갑지 않은 가을장마가 예고된 새벽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잔뜩 낀 구름 때문이 아니라 어둠을 용납하지 않는 가로등 불빛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것.

긴 밤을 보내고 겨우 뜬 눈, 눈물 나는 눈부심을 달래며 인가가 드문 곳으로 긴 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언뜻언뜻, 채워졌다 벗어지기를 반복하는 구름 낀 하늘을 볼 수 있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한참 동안 인적을 멀리하면서, 인간이 만들어 낸 욕망에 의해 가림막이 드리워진 자연을 탄식한다.

반갑지 않게 예고되고 있는 가을장마와 제13호 태풍 `링링'이 지구를 훌쩍 돌아 아마존을 향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의 산불이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아마존이 지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생명의 보루임은 우리는 생생한 지식정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산소가 포함된 기체들은 밀폐된 경우가 아니라면 어디든 공간의 제약이 없다. 그러므로 아마존 밀림이 만들어내는 산소가 이역만리 한반도와 그 땅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은 심각한 착각이다. 밀림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식생은 산소를 만들어내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2014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PCC의 제5차 종합평가보고서는 산림파괴를 포함한 토지이용 변화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의 11%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아마존의 밀림이 불에 타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공교롭게도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이후에 집중되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15%, 서울시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광활한 신록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은 절대로 자연적 발화 때문일 수 없다. 습지가 많은 열대우림은 인간의 방화가 아니면 그렇게 쉽게 불이 일어날 수도, 그렇게 빠르고 넓게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행동주의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2008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 <육식의 종말>을 통해 `공유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 한 마리가 매달 먹어치우는 식물의 양 900파운드, 2.54㎠ 당 24파운드의 압력으로 토양을 단단히 다지면서 벌어지는 급류에 의한 침식 우려, 전 세계적으로 소의 먹이로 사용되는 6억톤의 곡식(10억명의 지구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 등의 폐해를 경고했다.

브라질은 세계 2위의 쇠고기와 닭고기, 콩(대두) 생산국이다. 대두와 육류제품 수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가 무색할 정도로 극우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눈앞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가 아마존 밀림의 방화와 훼손을 조장하거나 방치했다는 의심은 여러 정황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사람의 식량이 아니라, 동물을 먹일 작물을 기르기 위한 농지를 만들기 위해 아마존 숲에 불을 지르고, 커지는 불을 제대로 진화할 생각은 하지 않으며, 한 곳에서 불을 질러 별 제재가 없으니, 다른 곳에서도 불을 지르는 끝 모르는 육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 코앞의 이익에 눈 멀어 있는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을 향해 질주하는 악마와 다를 게 무엇인가.

가을을 맞아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이 새롭게 단장했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는 글귀는 이생진 시인의 <벌레먹은 나뭇잎>에서 따왔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이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시인 안도현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세상을 꿈꾼다.

사람의 9월에 함부로 베어지는 나무들의 신음소리 듣기, 자주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 멀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사람 속에서 사람답게 살기에 9월은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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