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선 무슨 일이
공원에선 무슨 일이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9.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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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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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매일 바람은 가을을 물어다 주고 있다. 곧 공원에선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며 벤치에 앉은 낙엽 한 장에 마음을 주기도 할 것이다. 누구에겐 고독의 소품이 되는 낙엽이 어느 시인에겐 작은 위로로 해석되는 것은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을 배경으로 앤서니 브라운이 만들어낸 그림책 역시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네 개의 관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림책은 가을이라는 계절과 공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많은 메시지와 이미지를 던지고 있다.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공원을 찾은 찰스와 찰스 엄마, 스머지와 스머지 아빠의 시선으로 공원을 그리고 있다. 관점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른 사건처럼, 같은 풍경도 다른 풍경처럼 표현된다. 찰스 엄마의 눈에 비친 가을 공원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미술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가을 공원을 즐기기보다는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자신의 개가 다른 개와 어울리는 것을 마땅찮게 여긴다. 그리고 찰스가 험하게 생긴 여자아이와 말을 섞는 모습을 보고는 서둘러 공원을 떠난다. 더구나 공원으로 산책을 나오는데 뾰족구두라니. 찰스 엄마의 가을 공원 산책은 기계적인 일에 불과하다.

찰스의 공원은 가을이 아니라 겨울처럼 황량하다. 앙상한 나무의 이파리들은 엄마가 쓴 모자 모양이다. 엄마와 같은 벤치에 앉아 있지만 서로 얼굴을 돌리고 있다. 찰스가 느끼는 압박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엄마가 딴생각하는 사이 스머지를 만나 함께 놀면서 서서히 찰스의 공원에도 밝은 빛이 스며든다. 그러나 엄마의 꾸지람으로 놀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찰스는 스머지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스머지의 아빠는 실직자다. 종일 무기력하게 있다가 스머지와 개를 데리고 공원으로 간다. 그의 공원 역시 황량하다. 이파리 없는 앙상한 가지뿐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으나 눈은 감겨 있다. 그러나 스머지 아빠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집으로 돌아올 땐 스머지가 즐겁게 조잘대는 모습을 보며 기운을 차린다. 공원 가는 길에 울고 있던 액자의 주인공들이 거리에서 춤을 추고 꽃 가로등이 따뜻한 빛으로 비춰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머지의 공원은 가을이 아니다. 과일나무가 과일을 달고 있고, 온갖 꽃들이 피어 있다. 공원에서 찰스를 만나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친해져서 공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놀았다. 찰스는 꽃 한 송이를 꺾어 스머지에게 주고 다시 시무룩한 얼굴로 자기 엄마와 공원을 떠난다. 스머지는 그 꽃을 아빠에게 선물한다.

이처럼 바라보는 관점은 자신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나는 김훈 작가의 달래와 된장찌개 이야기를 좋아한다. 흔하게 먹는 된장찌개와 달래, 국물의 맛을 삼각 치정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 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올 때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고도 했다.

곧 가을이 푹 익어서 우리에게 밥상처럼 차려질 것이다. 나만의 사유방식으로 다시오는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권한다. 산다는 것은 다가오는 계절을 다시 누릴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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