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자전거
치타 자전거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09.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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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아빠와 함께 침을 맞으러 다닌 적이 있다. 찬바람이 돌면 두드러기가 심해지던 나를 아빠는 한의원에 몇 번이나 데리고 다니셨다. 그 기억이 아빠와의 첫 데이트다. 침을 맞을 때 따끔거렸던 기억과 함께 아빠가 사주었던 달콤한 과자와 따뜻했던 아빠의 등이 떠오른다.

지금은 병원이며, 어디든 내가 아빠를 모시고 다닌다. 아빠와 다니는 그 길에는 늘 아빠와의 첫 데이트가 아른거린다. 그때만큼의 아빠 나이로 나는 훌쩍 자란 것이다. 아빠가 내어주었던 넓은 등을 이제는 내가 내어 드릴 차례다.

딸에게 도서 `치타 자전거'(전민걸 글 글, 그림·한림·2018)를 읽어 줄 때마다 나는 아빠와의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아빠와 처음 사진 찍던 날, 아빠가 맛있게 익은 감을 따주던 날, 아빠가 자전거로 학교를 데려다 준 날 등 읽을 때마다 새로운 추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딸은 내 웃음을 알지 못해도 함께 웃어준다. 이 녀석은 이 추억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 책은 아빠와 함께하고 싶은 꼬마 숙녀 이야기다.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얼른 떼어 아빠의 치타 자전거처럼 쌩 달리고 싶지만 오늘도 여전히 바쁜 아빠다. 일터로 나가기 바쁜 아빠를 아이는 온종일 기다린다. 산 너머 아빠의 생활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아빠의 스컹크 방귀와 고슴도치 뽀뽀를 참아내며 네발 자전거를 타면서 아빠의 출근길을 상상한다. 심심한 것이 좋다고 아빠는 말했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보조바퀴를 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싶었던 아이의 상상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비둘기에게 빠진 이를 주고 소원 카드를 받기도 하고 치타가 와서 자전거가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산 너머 마을에 데려다 주기도 한다. 아빠와 드디어 함께 자전거를 탄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한다.

까칠한 턱을 비비며 뽀뽀하는 남편과 따갑다며 얼른 수염을 깎으라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고슴도치 뽀뽀가 떠오르고, 방귀 하나에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들한테 스컹크 방귀라고 놀려보기도 한다. 퇴근하면 육아로 출근이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제법 논리적으로 말을 할 줄 아는 딸은 아침마다 묻는다. “엄마는 언제 와요?”“오늘 일찍 오면 안 돼요?” 이 말은 언제나 나를 철렁하게 만든다. 언제나 부리나케 달려오는 엄마의 심정을 알기나 하냐며 딸에게 퉁퉁거리긴 하지만 이 책의 아이처럼 마냥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딸의 심정을 알기에 가슴은 늘 철렁한다. 또한 이제 딸만큼 아이가 되어가는 우리 아빠가 생각나 슬프다.

주말마다 목을 쭉 빼고 딸이 언제 오나 기다리시고 어디든 같이 갔으면 하는 아빠 모습에 마음이 울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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