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고행
그 여름의 고행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9.09.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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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어느 해 여름 뜻하지 않은 고행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야영장에서 전혀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 이유는 텐트엔 먹을 것 하나 수중엔 돈 한 푼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이젠 산을 오르기는커녕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당장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무릅쓰고 온갖 수단을 강구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결론은 걸어서 집으로 향하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을 떠난 지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았다. 삼복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상이가 캠핑을 가자는 말에 준과 문은 맞장구를 치며 반겼다. 목적지는 대둔산이었다. 무릇 그랬듯이 여행은 떠날 때의 기분이었다. 마치 배낭을 짊어진 것이 아니라 날개를 단 것처럼 즐거움과 웃음으로 들떠 있었다. 배낭을 멘 버스 안은 한여름의 푸른 젊음을 싣고 뜨거운 열정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야영장엔 어둠이 내리고 세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기타를 치며 그렇게 그 밤은 온갖 기분을 만끽하면서 그로 인한 무책임한 결과가 기다리는 고행의 길로 가고 있었다. 세 사람 앞에 남은 것은 더위와 배고픔과 갈증뿐이었다. 길 또한 어제와 달랐다. 어제는 들뜸으로 날개를 단 것처럼 쉽게 지나온 길이 지금은 왜 그리 멀고 어려운지 이제야 비포장도로에서 날리는 흙먼지를 먹고서야 세 사람은 그 길을 걸으면서 입장이 뒤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허기진 다리는 물로 배를 채우며 걸어가야만 했고 그 물은 땀으로 흘러내렸다. 누구나 그렇듯이 배고픔은 서럽고 혹독한 것이었다. 배고픔이 커질수록 어머니의 밥상이 그리웠지만 그럴수록 길 위에 땡볕은 배고픔을 비틀었다. 게다가 짓궂은 텃세 꾼들을 만나 어이없는 시비에 잠시간 밀고 당기는 다툼을 이어가다 남은 기력마저 지칠 대로 지쳐갔다. 하지만, 시간과 길은 나그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전이 쓰인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재촉하여만 했다. 걸어온 길 만큼 생각하면 남은 길은 그보다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희망이라는 기대감은 숨어 있던 힘을 솟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어느새 노을이 눈 끝에 닿아 있었다. 그 순간 왠지 노을은 나그네에게 많은 그리움을 안겨다 주는 것 같았다. 보내는 아쉬움 속으로 접어드는 보고 싶은 얼굴들이 늘 곁에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은 왜 그런 것인지 노을이 지고 나면 어둠 속으로 모든 것이 묻혀 버릴까 봐 그런 것인지 노을 속에 그려진 얼굴을 바라보며 걷다가 드디어 대전에 들어설 무렵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선 전당포를 찾아야 했다. 기타를 맡기고 돈을 빌려 쓰기 위해서였다. 겨우 차비를 마련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신탄진에 도착하였을 때 청주라고 쓰인 버스를 보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은 고행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고행을 찾아 겪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아마도 힘들고 어려운 고행을 반기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때론 고행을 통해서 뜻 깊은 성찰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비록 고행을 원하지 않았어도 만약 경험을 갖게 된다면 겸허히 낮은 자세로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도 괜찮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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