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부만 실천하면 된다
대통령 당부만 실천하면 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9.0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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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검찰총장은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여주지청장이던 지난 2013년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이다.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을 때 고위층으로부터 수사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이 말을 했다. 외압에 맞선 전력을 밝히며 인사권자보다 조직과 원칙에 충실한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이렇게 압축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밝힌 자신의 소신을 야당으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검찰총장에 임명되자 한국당은 “야권 인사들을 향한 강압적 수사와 압수수색 등으로 자신이 `문재인 사람'임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성은 날이 새버렸다”고 비난했다. 바른미래당도 “검찰의 독립이 아닌 검찰의 `종속'을 선언한 인사”라며 “`윤석열 체제'의 검찰은 권력에 더 흔들릴 것이 뻔하다”고 비난했다.

윤 검찰총장의 이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검찰이 지난달 27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주변을 전격 압수수색한 후부터다. 인사청문회 전에 장관 후보자를 겨냥해 친족들을 압수수색 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지자 적절성 논란은 물론 배경을 놓고 구구한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검찰권 행사를 빙자한 정치개입으로 폄하하는 해석이 적지않다. 검찰개혁 의지가 강한 조 후보자를 낙마시키거나 치명상을 입혀 목전에 닥친 대수술을 피하자는 꼼수라는 것이다. 국회 결정을 지켜본 뒤 수사에 착수해도 늦지 않은 데 느닷없이 정치적 절차에 끼어들어 판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야권에서는 짜고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경계도 나온다. 조 후보자에게 청문회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할 수 없다'는 구실을 만들어주기 위한 술수로 보는 것이다. 윤 청장의 유별난 공명심이 만들어낸 퍼포먼스라는 냉소적 평가도 있다.

진짜 충심에서 나온 결정일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이들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소신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할 때 직속상관인 중앙지검장에게 직접 보고도 하지 않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한 전력을 들어 이번 압수수색은 윤 총장 소신의 산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자 가족의 증인 출석을 놓고 벌어지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속이 뻔히 보이는 줄다리기로 미뤄볼 때 조 후보자의 청문회는 무산되고 임명은 강행될 공산이 높다. 이렇게 되면 검찰은 최고 수장인 현직 법무장관을 수사하는 역대급 난제를 떠맡게 된다. 더욱이 검찰은 청문회가 벌어지기도 전에 수사에 착수해 법원으로부터 광범위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받아 전광석화처럼 집행했다. 법원을 설득할 정도의 확증을 잡고 수사에 들어갔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수사 결과가 나오든 검찰이 지게 될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권에 치명타를 안기거나, 아니면 `사람에 충성한 검찰'로 몰려 야당의 뭇매를 맞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검찰이 맞이하게 될 난감한 처지는 궁지이면서 한편으론 절호의 기회도 될 것이다. 스스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해서 셀프 개혁의 가능성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임명하며 “살아있는 권력도 두려워 말라”며 “청와대든 또는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검찰이 자신들에 대한 개혁을 저지하려고 무리수를 동원했다는 오해를 벗는 길은 대통령의 이 당부를 실천하는 것이다. 윤 총장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사결과를 내놔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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