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과 사(死)
생(生)과 사(死)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09.0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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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아침이면 눈을 뜨고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특권이지만 우리는 너무도 당연시하여 소중한 것임을 모른다. 내 입에 음식을 넣으면 그 음식물이 몸속으로 들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변(便)으로 빠져나오는 그 당연한 일들이 내 몸의 생명을 유지하는 매일의 기적임을 모른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고 순환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내 몸을 순환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연계해서 움직인다는 자체가 살아있는 신비임을 모르고 살았다. 생과 사의 문턱이 너무 낮다는 사실을 목격하기 전에는 말이다.

얼마 전 이종사촌 오빠와 영원한 이별을 하였다. 어린 시절에 방학만 되면 이모네 집이나 외삼촌 댁으로 놀러 가 외사촌들과 함께 노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어릴 적엔 굉장히 가깝게 지냈는데 커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얼굴 볼일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종사촌들이 연 1회 이상 모여 우애를 다지는 모임을 6년째 하게 되었다. 그날도 1박 2일로 계곡에 있는 팬션에 모여 밤늦게까지 즐겁게 놀았는데, 새벽에 갑자기 제일 큰오빠가 가슴과 목의 통증을 호소하며 식은땀을 흘리더니 쓰러져버린 것이다.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오빠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119를 불렀으나 지리적 여건상 너무 늦어버렸고 병원에 도달했을 땐 이미 늦었다고 하였다.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촌각을 다투며 마음을 졸였으나 너무나 황망하게 큰오빠를 잃은 우리는 모두 망연자실하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가깝고 허망한 것이란 말인가? 생사(生死)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는 것이라고 머릿속으로는 늘 생각하였지만, 몇십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생사의 갈림길이 나누어지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길로 가는 것임을 소중한 것을 잃은 후에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매일을 살고 있는 이 공간에서 죽음은 외면하고 그동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았다.

삶과 죽음이 내겐 그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었고 영혼의 존재를 가늠하는 형이상학적 가치의 기준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현재의 삶에서 내 몸과의 밀접한 언어였다. 누구나 한번 태어나서 한번 간다고 머릿속으론 알았지만 갑작스러운 몸의 기능 정지가 곧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살아온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태어나면서 생명을 얻음과 동시에 늘 죽음과 함께 있었다.

우리 몸도 하나의 기계이다. 오래 사용하여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아프고 고쳐야 한다. 기계도 조심해서 잘 다루고 관리를 잘하면 오래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건강할 때부터 조심하며 챙기고 병이 났으면 서둘러 고치고 몸이 말하는 소리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도 선택 없이 주어졌듯이 죽음의 순간도 선택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누구도 예외 없이 몸의 유통기한이 있고 죽음으로서 삶을 마감한다.

우리 몸은 지구에서 유한한 일회용 삶이다. 1년이든 100년이든 운명이야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한번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온다. 정해진 길이기에 질병으로 마감을 하든 갑작스러운 사고로 마감을 하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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