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우잿길
감우잿길
  •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9.09.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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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부릉부릉 둥둥둥~. 새벽 5시 반이다. 벌써 소독차가 돌아다닌다. 어린 시절 동네에 소독차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한다. 소독차에서 품어 나오는 연기 속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신나서 따라가곤 했다. 그 당시 아이들에게 소독차만큼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또 어디 있으랴.

며칠 전, 풀을 뽑으려고 꽃밭에 들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장미넝쿨 잎사귀에 송충이가 붙어 있었다. 벌레를 싫어하던 나였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해충방제 실시로 예전에 비해 벌레들이 많지 않다. 그래도 벌레는 너무 싫다. 벌레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200여 명 정도로 군 단위의 학교 중에서 큰 학교였다. 운동장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많았다. 친구 세 명이 두 팔을 벌려야 겨우 닿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였다. 열 그루 남짓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로 인해 운동장은 숲이 우거진 것처럼 운동장은 시원한 휴식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내가 끔찍이 싫어한 송충이가 플라타너스 나무에 많았기 때문이다. 나뭇잎에 붙어 있던 송충이가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비 오듯 했다. 이렇게 플라타너스 나무가 우거진 계절이면 최악이었다.

아침 등굣길, 멈칫! 교문 앞에서 송충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교실까지 가려면 플라타너스 나무를 지나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데 송충이가 내 발에 밟히는 게 싫었다. 송충이 때문에 학교 안 간다고 고집 부리다가 엄마에게 여러 번 혼났다. 엄마는 송충이가 뭐가 무섭냐고 말했지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송충이가 내 발에 밟힐 때 터지는 그 물컹함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플라타너스 나무에 대한 기억은 온통 송충이에 대한 기억으로 둘러싸여 플라타너스 나무의 싱그러움을 보지 못했다.

음성에서 금왕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넓고 곧은 자동차 전용도로와 구불구불 옛길이 있다. 이 길 중에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 있다. 12㎞ 남짓 가로수가 펼쳐진 감우잿길이다. 평균 시속은 60Km지만 보통은 80Km 정도로 달린다. 시내를 벗어나면 나를 반기듯 양쪽에서 길게 늘어선 가로수 길은 플라타너스 나무로 이어진다. 그 길로 운전할 때면 가로수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이글거리는 8월의 태양도 나뭇잎으로 가려 그늘을 이루고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의 흰 구름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굽은 고갯길에 다다르면 속도를 줄이고 주변 자연을 더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 순간 자연 경치에 취해 누구도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또다시 긴 가로수 터널이 펼쳐져 싱그러움이 가득 찬 길을 돌아 물결이 반짝이는 저수지를 맞이한다. 구불구불 저수지 길에는 벚나무가 길게 줄지어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된다. 나에게 아침마다 상쾌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플라타너스 나무였다.

그 순간 송충이에 대한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늘이 되어주는 가로수 길은 나의 친구가 된다. 그동안 플라타너스 나무의 참다운 매력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좋아하면서도 아직도 플라타너스 나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송충이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은 한번 부정적으로 입력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번 뇌 속에 박힌 잘못된 생각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 부정적인 생각을 새롭게 바꾸려면 여러 번의 긍정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또,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뇌에 뿌리 깊게 박힌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기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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