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축제의 계절에
다시, 축제의 계절에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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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인간에게 공예는 일상에서 만나는 이유로 익숙하며, 또한 예술적 가치로 인해 새로움을 욕망하게 하는 영역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기인된 공예는 인간과 함께 진화하면서 인간의 실천적 예술의 증여물로 자리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공예는 삶을 반영하는 예술이라기보다 삶 속의 예술이라 해야 더 적절하다. 삶 속에 이루어지는 예술인 까닭에 상념보다 실제의 도구적 목적성이 더욱 잘 반영되는 듯 보이지만, 또한 가장 솔직한 표현의 대상임에도 틀림없다. 공예의 이 같은 중층적 속성은 때로는 정체성의 모호함으로 쟁점화 되곤 한다. 다른 관점에서 공예가 삶 속에서의 실천적 예술로서 자리하는 이유로 `문화의 전이'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존재임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랑이 움직이는 것처럼, 인간의 매 순간은 정서적·물질적 변화 속에 있으며, 이 변화와 민감하게 호흡하는 것 역시 공예이다. 공예에 있는 이 같은 관점을 보다 확대해보면, 인간이 지닌 보편적 정서의 직접적 대상체로서의 위치가 보다 명확해진다. 즉 인간이 새로운 것을 욕망하면서 타자를 수용하고 극복하며, 내면화함으로써 또 다른 문화를 만든다면, 공예는 늘 그것의 용기(容器)가 되곤 했던 것이다.

문화가 그런 것처럼 공예는 인간과 더불어 이동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며, 이것이 익숙해질 무렵이면 또 새로움을 욕망하고 잉태해 왔다. <중략> 새로움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차이'를 만들고, 다시 이에 익숙해지면 또 다른 새로움을 낳도록 유인한다. 어쩌면 오래전에 있었을지도 모를 새로움은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모든 환경적인 것들을 체화하여 이후의 세대에게 고스란히 익숙함으로 전한다.

인간은 늘 그 안락함과 신선한 자극 모두를 갈급하며 살아가는 근본적이고도 모순적인 욕망을 가졌으나, 그것이 곧 삶의 양식이자 문화를 변화시키는 두(가지) 가치로서 이미 문화의 순환 패턴으로 자리한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래된 기록의 흔적들을 훑어보다가 2013년에 쓴 글을 발견했다. 그 해 열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발문(跋文)으로 기억되는데, 낯간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 은 그 당시 내가 제안한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였다. 그 때 우리는 보라색을 행사장 모든 곳에 적용했는데, 상징적으로 대비되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명제를, 빨강과 파랑의 극단으로 상정하고 이를 혼합할 때 나오는 보라색을 사용함으로써 주제에 대한 표현의 가치로 부각시켰다.

직지축제가 처음 개최된 해는 2003년이었다. 그 당시 제안한 주제는 `돋움에서 펼침으로'였다. 양각이라는 금속활자의 구조적 형태에서 차용한 `돋움'은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창조정신과 새로운 발돋움을 의미한다. `펼침'은 금속활자의 창조를 인쇄문화의 발달 및 책의 출간정신, 그리고 무궁한 확산을 추구하는 세계로의 인도(引導)를 나타낸다.<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청주문화대전 참고> 바야흐로 다시, 축제의 계절이 본격화되고 있다. 청주야행이 한 차례 이미 치러졌고, 대한민국 독서대전과 청주읍성큰잔치, 청원생명축제, 청주공예비엔날레 등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풍요로운 문화도시 청주의 빛남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숱한 축제의 향연에 뚜렷한 주제의식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듯 해 아쉽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청주시는 민선 7기 개막과 더불어 각종 행사의 간소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방정치권을 중심으로 얼굴 알리기로 특권의식이 은근히 과시되는 의전 등의 간소화는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행사의 상징성이거나, 해당 축제가 당대에 함유하고 있는 철학적 가치에 대한 성찰과 기획 과정에서의 창의적이고 진지한 사고를 통한 과정의 소중함마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래된 책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A.하우저가 “사람들이 예술가를 휘황찬란한 조명 속에서 헤엄치게 한 것은 거기서 반사되는 불빛 속에서 그들 자신이 빛나고자함 이었다”라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축제가 진지하게 빛나야 시민도, 청주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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