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8.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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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시계를 사느라, 아니 그 시계를 좀 더 싸게 사려다 흥정이 길어졌고, 그러다 일행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까마득히 몰라 길을 잃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표시를 낼 수도 없었다.

“언니, 걱정 마. 내가 일행을 찾을 수 있어.”

나를 따라 시계방으로 들어온 지인의 표정에서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를 안심시키려 자신은 괜찮으니 염려 말라 한다. 미안했다.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타국에서 일행을 찾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때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중국 경찰인 공안들이 보였다. 간단한 영어로 도와 달라고 하자 공안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래도 나름 도와주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 보였다.

길을 잃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이었다. 엄마 치맛자락을 손에 꼭 움켜쥐고 오일장을 따라간 적이 있다. 읍내의 장터는 어린 나에게는 신천지였다. 그중에서 제일로 눈을 잡아끈 것은 찐빵이었다. 채소를 주로 파는 제법 큰 골목 중간에 있던 찐빵 집은 천막으로 장날만 쳐 놓고 팔았다. 보리밥에 나물죽을 하루걸러 먹던 내게 찐빵은 냄새만 맡아도 좋았다. 찐빵 집에서 한참을 우두망찰 서 있다 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도 사람들의 북새통에 나를 잊으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다행스럽게 동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엄마를 찾았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어릴 때 일이 잠깐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이곳은 예전의 동네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두려움도 밀려왔다. 그런데 중국 공안의 표정도 무척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자신들끼리 웅성거리더니 길 가던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 보였다. 그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선뜻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중국 현지 가이드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며 전화를 해 달라고 했다. “텔-레-폰, 플-리-즈”, 천천히 영어 단어를 말하자 그 청년은 알았다는 듯 자신의 전화로 우리 가이드와 연락을 해 주었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다. 길을 잃었던 기억은 어떤 때는 자신을 단단하게 성장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영영 깊은 상처로 남기게도 한다. 요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어릴 때도 그랬고, 얼마 전 중국 대련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그랬고 길을 잃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속담에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 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삭막하기만 할 것 같은 세상에도 그래도 사람의 인정은 어디나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 사회도 길이 안 보이는 일들이 많다. 이웃 국가들과의 문제부터 시작해 나라 안의 일들까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올바른 길을 잘 찾아야 한다. 한나라가 무너질 때는 바깥의 공격보다 안에서의 균열이 그 원인이 더 크다.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차근차근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듯 가다 보면 우리 앞에 반듯하게 놓인 길이 탄탄대로가 보일 것이다. 우리는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난했던 무구한 역사도 잘 헤치고 견디어 승리한 민족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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