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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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19.08.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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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텔레비전에서는 고민 자랑이 한창이다. 견디기 힘든 혼자만의 고민을 공개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보려는 일종의 TV 고민 상담 프로그램이다. 오해와 소통의 부재로 생겨난 마음의 벽을 서서히 허물고 서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같은 고민을 하는 시청자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엔 호기심을 자극해 시청률을 높이려는 흔한 예능프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진지함에 반해 지금은 애청자가 됐다.

이태 전, 문신 중독에 걸린 남자친구가 고민이라는 출연자가 있었다. 등과 가슴은 물론 목과 손가락까지 문신으로 덮인 그 남자친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고, 내가 좋다는데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자기는 온몸에 문신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피부의 칠십 퍼센트가 흉터로 덮이면 죽는다.'어렸을 적 동생이 허구한 날 다치고 들어오면 어른들이 야단치며 했던 말이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마음에 동생이 잘못될까 봐 내심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문신도 일종의 상처인데 온몸이 문신으로 덮여도 괜찮을지, 그런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할지 충분히 공감되는 고민이었다.

그 내용이 유독 떠오르는 건, 아마도 그 당시 나도 문신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인 듯싶다. 눈썹이 거의 없는 나는 화장할 때마다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이 눈썹 그리는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안면이 살짝 비대칭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몇 번을 그렸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며 공을 들여도 짝짝이가 되기에 십상이었다. 어쩌다 예쁘게 잘 그려진 날이면 왠지 모르게 당당해져서는 온종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외출했다 돌아와 화장을 지운 나를 보면 남편은 늘 모나리자라고 놀리곤 했다. 그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눈썹 문신을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 눈썹처럼 자연스럽게!'라는 감빨리는 광고에 이끌려 아들과 함께 C 시로 뷰티 숍을 찾아갔던 게 그때였다. 아들은 눈썹이 짙은 아빠와 나를 반반 닮아 앞쪽만 진한 반 토막 숯 검댕이 눈썹이다. 혼자 가는 것이 살짝 겁나기도 했고,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의 고민도 해결해줄 셈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고통을 참으며 함께 시술을 받았고 둘 다 결과에 만족했다. 언제든 제 역할을 확실하게 해 주는 눈썹 때문에 삶의 질이 한층 높아졌다고나 할까,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걸 왜 더 빨리 못했을까 후회했을 정도니까. 그 후로 화장하는 시간이 확 줄었고, 잠깐씩 나갈 때는 민얼굴에 선크림만 발라도 충분했다.

생각해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그런 마음의 문신이 필요한 것 같다. 망설여지거나 외면하고 싶을 때, 갈피를 몰라 헤맬 때도 선명하게 일깨워줄 지워지지 않는 삶의 좌우명 같은 것 말이다. 잘 사는 일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성현의 가르침이어도 좋고, 평범한 농부의 혼잣말이어도 무방할 것이다. 또, 중독이 된다 한들 어떠리.

내 가슴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심성의'가 새겨져 있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라는 뜻이다. 이것 때문에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서슴없이 순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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