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반전
늑대의 반전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8.2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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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동화에서 늑대는 언제나 악역이다.

교활한 술수로 아기 돼지를 잡아먹고 연약한 초식 동물을 덮친다. 심지어 어린 소녀를 잡아먹으려고 꼬드기기도 한다.

영화에서조차 늑대로 변하는 인간은 무서운 저주에 걸린 캐릭터로 나온다. 왜 이렇게 늑대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굳어졌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늑대의 야생 본능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요즘엔 창작동화에 착한 늑대가 가끔 등장한다. 그중에 지난해 칼데콧 상을 받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는 늑대와 어린 소녀의 에피소드를 다룬 그림책이다. 글 밥이 없고 맑은 수채화로 된 그림만 있다.

세찬 눈보라가 치는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소녀는 길을 잃고, 무리에서 뒤 쳐진 새끼 늑대를 만나게 된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에게 무리에서 뒤 쳐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소녀는 이미 지쳐버린 새끼 늑대를 안고 멀리 들리는 늑대들의 울음소리를 더듬어 찾아간다. 자신의 온기로 품어가며 어미에게 새끼 늑대를 돌려주기 위해 깊은 숲속에서 하이에나와 부엉이의 위협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어미 늑대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느끼는 소녀의 놀람과 두려움, 소녀도 새끼 늑대도 아직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지만 작은 짐승을 향한 애틋함으로 어미 늑대와 새끼 늑대를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힘을 잃은 소녀는 눈 위에 쓰러지고 만다. 소녀가 쓰러진 곳을 알려주기 위해 울부짖는 늑대의 무리는 가족에게 소녀의 위치를 알려주며 빚진 마음을 갚는다.

의성어 외엔 어떤 글도 없이 단순한 수채화 그림 속에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엉성한 듯 그린 소녀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두려움이 눈에 가득한 그림만으로도 풍부한 내용이 전달된다.

소녀가 집을 나서기 전 단란한 가족의 모습과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몸을 녹이는 모습이 그림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어 가족의 사랑이 주는 감동은 두 배가 된다.

말로 소통할 수 없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의 진심을 읽고 돕는 짧은 이야기 속에 긴 여운이 남는다. 그림책을 보면 알겠지만 글 밥이 없는 대신 늑대와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표정이 글 이상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실제로 늑대는 똑똑한 동물이다. 생존에 필요한 사냥 외엔 불필요한 살육은 하지 않으며 가족애가 넘치는 동물이라고 한다. 인디언들 사이에선 영물이라고까지 불린다. 개와 달리 길들이기 힘들다는 단점은 늑대를 인간의 마음에서 밀어내고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의 원제는 다. 원작자는 늑대를, 우리나라는 소녀(인간)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싶었나 보다. 뭐가 다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수평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 저항할 힘이 없는 존재끼리 느끼는 연대감으로 뜻하지 않은 용기를 낸 소녀처럼 약하지만 도울 힘은 어느 상황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감히 소녀를 영웅이라고 말하고 싶다. 생명을 구했으니 말이다. 생명이 생명에게 베푼 마음은 이기적 유전자를 예찬하는 작금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다. 어떤 생명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생명이 갖고 있는 본래 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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