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화원들과 함께하는 여름 끝자락의 휴가
조선 화원들과 함께하는 여름 끝자락의 휴가
  •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19.08.2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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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8월 중순, 이맘때 가장 많이 듣는 안부인사는 휴가와 관련된 말들이다. “휴가는 잘 다녀오셨어요?”혹은 “휴가 때 어디 좋은 곳 다녀오셨어요? 등등. 다들 여유롭고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면 좋겠지만, 여건상 제대로 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이들은 종종 대답을 얼버무리고 만다. 이런 분들을 위해 몇 시간 안에 우리 땅의 명승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 휴가 방법을 살짝 알려 드리려 한다. 그것도 김홍도, 정선, 강세황 등 이름 쟁쟁한 조선 화원들과 함께하는 특급 휴가 방법을 말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버스든 기차든 잡아타고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면 된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을 실시하고 있다. 실경산수화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풍광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동양의 산수화는 관념산수, 즉 실재하는 현실의 풍경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의 이상향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7세기 왜란과 호란이란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은 이후, 조선의 선비들은 우리 땅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렸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풍경들을 화폭에 담아내었으니, 이것이 바로 실경산수화이다. 선비들은 이 실경산수화를 방에 걸어놓고 산수를 즐기며 마음을 맑게 하였다고 한다. 이를 `누워서 산수를 노닐다'란 의미로 와유(臥遊)라 하였는데, 그들만의 피서법인 셈이다.

실경산수화의 소재로 가장 사랑받은 장소는 뭐니 뭐니 해도 금강산이었다.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금강산과 설악산, 관동지역의 풍경들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장소였으며, 화원이라면 한 번쯤 화폭에 담고 싶은 절경이었다. 그래서 이번 특별전에도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 지방의 실경산수화가 가장 많이 전시되었다. 겸재 정선의 독창적인 화법이 돋보이는 《신묘년풍악도첩》, 김홍도가 금강산을 여행하며 바로바로 그려낸 《해동명산도첩》, 가을철 붉게 물들어가는 금강산의 모습을 화사하게 묘사한 정수영의 《해산첩》,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되는 《해악전도첩》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필자의 눈을 가장 잡아끌었던 것은 우리 충북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이었다. 김홍도가 단양·제천 일대를 유람하고 그린 《병진년화첩》을 실견했을 때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고, 수옥정의 시원한 물줄기를 그대로 담아낸 이인문의 작품 앞에선 우렁찬 물소리와 차가운 물방울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이방운의 《사군강산삼선수석첩》을 들고 싶다. 1802년 청풍부사 안숙이 단양·제천을 여행하고 느낀 감흥을 시와 그림으로 담은 이 화첩에는 이제는 볼 수 없는 충북의 절경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6면 <금병산>에는 우리나라 3대 정자로 꼽히는 한벽루와 청풍관아, 강 너머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금병산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자 위 칸에는 3명의 선비가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래 칸에는 학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날개를 쉬고 있다. 강 위에는 바람과 물결을 타고 흐르는 돛단배와 그물을 드리운 낚싯배가 유유히 떠 있으며, 건너편 강변에는 나귀를 탄 선비와 소를 모는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한벽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바로 이러했을 것이다. 호서제일이라 불렸던 이 풍광을 비록 이제는 볼 수 없지만, 이렇게 화폭을 통해서라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사실 그림의 감동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참 무모한 일이다. 이 전시가 9월 22일까지 열린다 하니 부디 직접 작품을 만나 조선 화원들의 필치를, 그들이 느꼈을 운치를 직접 경험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을 더하자면 영상실에 꼭 들려보시길. 빈백 소파에 누워 멋진 국악과 실경산수화가 어우러진 영상을 보며 그야말로 와유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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