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다하는 자세
책임을 다하는 자세
  • 박혜지 청주시 가경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 승인 2019.08.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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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박혜지 청주시 가경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박혜지 청주시 가경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처음 행정복지센터에 발령받던 날, 그곳의 생경했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소란스러운 실내, 분주한 직원들, 낯선 내 자리.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내가 아닌, 민원대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낯선 기분도 잠시, 나의 발령과 동시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 전임자의 인수인계가 정신없이 이뤄졌고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음 날부터 바로 민원을 받아야 한다는 팀장님의 말씀에 그동안의 노력이고 뭐고 그냥 멀리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에서 오는 강박 때문인지,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 때문인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첫 단추를 잘 끼워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면접장에서 분명, 다양한 사회 경험과 봉사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청주 시민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던 나였다.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배워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나였다. 일신의 안위보다 공익을 먼저 생각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나였다.

하지만 그런 내 자신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원을 받은 첫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나에게 삿대질하는 민원인을 맞닥뜨렸고, 거기에는 일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큰 분노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던가. 퇴근을 몇 초 앞두고 호된 신고식을 치른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식사를 하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문득 그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리면서 그 표정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상황을 탓해봤지만 공허한 마음만 커질 뿐이었다. 어쨌든 내가 한 실수에서 비롯된 소란이었고, 그 시간을 되돌릴 수도, 민원인의 화를 가라앉힐 수도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자리에 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더 강화되는 특성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헌법 제7조 1항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나는 이 조항에 공직자로서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방향과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법률과 규정을 충실히 준수하는 객관적 의미로서의 책임감은 물론이거니와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책임 의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항상 친절한 민원인만 만날 수 없고, 항상 완벽한 응대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직자로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실수의 순간들을 상기하고, 만족스러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다 보면 처음 내가 다짐했던 모습의 나, 공무원이라는 이름표에 어울리는 나로 성장해 있지 않을까. 외적으로는 공무원이라는 자리에서, 내적으로는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자리에서 내 인생을 어떤 의미들로 채워나갈지 고민하던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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