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고노 담화
두 개의 고노 담화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08.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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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일본이 내각 차원에서 침탈의 과거사를 인정한 경우가 세 번 있었다.

우리에겐 `일본의 과거사 반성(?) 3대 담화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1982년의 미야자와 담화, 1993년의 고노 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 등이다.

이중 가장 우리에게 와닿는 담화는 고노 담화다.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로, 그는 일본군 위안소 설치 및 일본군`위안부' 강제징집을 인정하고 직접 사죄했다.

고노는 당시 정부 차원의 조사를 통해 일본 육군이 직간접적으로 전장의 매춘소(위안소)의 설치에 관여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고 사과했다. 파장은 컸다. 이때까지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 당시 동원된 (위안부) 여성들이 민간 조직에 포섭됐거나 자발적으로 참여했음을 주장하며 강제 동원 사실을 부정해 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1993년 8월 4일에 발표한 담화문의 요약이다.

`정부는 재작년(1991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발표한다.

조사 결과 장기간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됐으며 위안부들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감언, 강압에 의해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었다. 위안부의 생활은 참혹했다. 위안부의 출신지는 일본을 제외하면 조선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조선반도는 일본의 통치하에 있어서 위안부의 모집과 관리 등은 대체로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강압으로 행해졌다.

정부는 이 기회에 종군 위안부로 고통을 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 우리(일본)로서 그런 마음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앞으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하고 싶다. 우리는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를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며 같은 과오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금 표명한다.'

담화가 발표되자 자민당 등 일본 우익 정당과 단체의 극렬한 반발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미야자와 총리와 곧바로 내각을 이어받은 무라야마 총리는 `꿋꿋하게'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고 담화를 철회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이 19일 고노 다로 외무상의 담화를 대서특필했다. 고노 외상은 이날 담화를 통해 한국에 대한 사실상의 추가 보복을 시사했다.

그는 한국이 청구권 협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음을 주장하며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한국 정부의 행정행위로 왜곡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인정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이 담화는 이날 일본의 전 언론이 비중 있게 다뤘다.

공교롭게도 이날 담화를 발표한 고노 외상은 26년 전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하며 한국인에게 `사죄'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아들이다. 부친마저 인정한 침탈의 역사를, 그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고노와 아베 정권. 일본의 후세들이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무엇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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