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향기2
그날의 향기2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8.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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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폭염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나날, 그날도 무척 더웠다. 지인과 함께 청바지를 살 요량으로 청주의 본정 내 상가를 찾았다. 서부로 향한 광부들의 작업복이었던 청바지가 이젠 바지패션 브랜드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청바지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입어보면 허벅지에서 걸려 올라가지 않고, 허리가 맞아 입어보면 빌려 입은 듯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기야 훌라후프를 두르고 있는 양 볼록한 뱃살, 호박 살처럼 축 늘어진 엉덩이는 요즘 청바지 입기에 영 아닌듯하다.

몇 군데의 점포를 들렀지만 도대체가 기성세대가 입을만한 바지를 구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무리 끌어올려도 골반에 걸치는 골반바지, 게다가 바지통은 왜 그리 짝 달라붙는지 어색하고 불편하다. 앉기만 해도 속옷이 드러나고 팬티보다 바지 허리가 더 아래로 내려가는 바지를 입고 있자니 영 민망하기 그지없다.

매장마다 전시장 마네킹은 물론 메인코너도 실밥이 너덜거리는 찢어진 구제청바지가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아무리 유행을 따라가려 해도 아니 패션 감각이 탁월하다 해도 구제청바지엔 영 손길이 가지 않는다. 굳이 정갈한 청바지를 찾는 건 아닌데 일자핏 바지는 매장 한쪽에 겨우 진열되어 있을뿐더러 수량도 얼마 되지 않다.

기성세대가 입을만한 쭉쭉 늘어나는 스판바지를 사기엔 무리일까. 발가락에 열이 날 정도 몇 번을 돌고 돌아 살짝 찢어진 듯, 해진 듯한 바지 두 장을 겨우 구입했다. 그것도 몸에 옷을 맞추는 건지, 옷에다 몸을 맞추는 건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요즘 세태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문을 나서자 따가운 볕이 또다시 길을 안내한다. 터덜터덜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네온이 번쩍거리는 빙수가게로 절로 발길이 닿는다. 예전의 팥빙수가 아니었다.

빙수도 퓨전이다. 우유를 얼려 빙수기계에 돌리면 솜사탕처럼 유리그릇에 소복이 쌓인다. 그 위에 팥을 수북이 얹혀놓고 과일조각과 액상초콜릿으로 한 컷 멋을 낸 커피빙수, 메론 속을 파내고 그 속에 얼음과 과일 그리고 인절미에 콩고물까지 듬뿍 맛깔스럽게 뿌려진 멜론빙수, 입안에서 실크처럼 부드럽고 달달하게 사르르 녹아내리는 빙수는 그야말로 눈으로 먹고 입으로 먹는 세상이었다.

예전엔 빙수를 해 먹으려면 팥을 팍팍 삶아 해 먹었다. 불린 팥을 압력솥에 삶아 찬물에 헹군다. 다시 냄비에 설탕, 올리고당, 약간의 소금을 넣고 저어주면서 중불에서 맛 들이기를 했다. 물이 자작할 때까지 졸이려면 말이 쉽지 더운 여름날 불 앞에 팥을 조리고 있음 등줄기에 비가 내리고 이마엔 구슬방울들이 떨어진다. 지금처럼 과일, 생크림장식 없이 인절미와 미숫가루를 술술 뿌려 먹으면 왜 그리 만나던지. 그 맛은 늘 머릿속에 기억되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과일과 생크림으로 환상적인 비율의 퓨전빙수, 이렇게 먹거리도 시대 흐름에 따라 날로 변신하는 퓨전시대인데 어찌 나만 제자리걸음이었던지. 발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 패션변화의 바람은 개성표현에 앞장서서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당연히 유행에 가장 민감한 패션트렌드가 변하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머리 허연 우리가 구제청바지로 패션 감각을 아니 유행을 조금씩 따라가면서 왠지 모를 이 허전함은 뭘까. 젊은 세대에게 표시 나지 않게 조금씩 밀리면서 좀처럼 설 곳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워지는 날이다. 덥다. 오늘 유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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