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민부론'을 기대한다
새로운 `민부론'을 기대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8.1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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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김정은이 집권 후에 300명이나 총살시켰어요, 인민무력부장은 회의 중에 졸았다고 총살시켰어요. 이런 지도자와 협상하는 게 맞다고 봅니까?”. 지난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낙연 총리에게 이렇게 따졌다. 이 총리는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말문이 막힌 안 의원은 머쓱해진 얼굴로 머뭇거리다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번번이 총리의 역공에 당하던 그가 끝으로 한 말이 “총리께서 말은 참 잘하신다”는 쓰디쓴 푸념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언쟁은 한국당의 한계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총리의 언변이 수준급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를 듣는 이의 체증을 한방에 내려 앉히는 `사이다'급 달변가로 만든 것은 한국당의 경박하고 부실한 문제 제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 시민들이 한반도기와 인공기만 흔들었지 태극기는 보이지않았다”며 “대통령이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평양까지 갔느냐”고 공격했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내려오면 서울 한복판에서 인공기를 흔들까요”라는 응수에 입을 닫는 식이었다.

한국당의 여당에 대한 대부분 공세에서는 `왜'만 두드러졌지 `어떻게'는 보이지 않는다.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대안없는 비판으로 일관하며 정책적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최근 얼어붙은 한·일 관계에 대한 대정부 비판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제보복 징후가 있었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가 당했다는 외교 무능론을 제기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대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대통령이 조속히 아베 총리를 만나 외교적으로 위기를 타개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아베를 만나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이낙연 총리식 반격에 대한 답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

아베 총리를 찾아가서 “우리 대법원이 철없는 판결을 했다. 일본 기업에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를 하라던 지, “한국 대법원이 촛불혁명 이후로는 대통령과 담합을 하지 않는다. 이제서야 3권분립이 바로 서게 된 한국의 상황을 헤아려 달라”고 사정을 하라던 지, 최소한의 방법론은 제시가 됐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모욕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근사한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경제적 우위를 무기로 한국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이 아베 정권의 목적임을 삼척동자도 알게 된 마당에서 차마 이런 제안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 대일 감정이 폭발하고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자 문 대통령은 아베를 만나라는 주장도 쏙 들어갔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동네북처럼 두드려대면서도 대안은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서는 턱만 괴고 있다. 일자리와 민간소득 늘리기의 중심은 기업이 돼야하니 기업활동에 장애가 되는 규제 완화가 답이라는 흘러간 레퍼토리만 되뇌일 뿐이다.

그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한국당이 마침내 지지부진한 문재인 경제를 대체할 묘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 82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이른바 `민부론(民富論)'이 그것이다. 국민을 모두 부자로 만들겠다는 가슴 설레는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의 평가는 시원찮다.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5만달러로 끌어올리는 것이 `민부론'의 목표란다. 뻥튀기를 조금 하면 4인 가족이 연간 2억원 이상을 버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국민 80% 이상이 지금의 국민소득 3만달러도 먼나라 얘기로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들이 기대도 공감도 할 수 없는 목표를 잡았지만 달성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다시 옛날로'다. 민부론에는 법인·상속세 인하,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 금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완화, 대체근로 허용 등이 담겼다고 한다. 진보 쪽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반하는 내용 일색이라며 국가적 과제인 양극화에 대한 고민은 한 줌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벼르고 벼르다 내놓은 회심의 카드가 `도돌이표'에 그치다 보니 대표적 보수 유튜버로부터도 “새로운 게 아무 것도 없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한국당은 다음 달에 민부론의 최종판을 발표한다고 한다. 감세와 규제 철폐로 대기업을 살찌우고, 그들이 떨어트리는 낙숫물로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기만적 약속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정책정당으로서 깊은 성찰이 담긴 새로운 민부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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