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와 이지매
왕따와 이지매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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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짐승과 달리 학습을 통해 사유하는 존재로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산다. 생명 있는 것들은 대부분 공생관계로 살지만, 우리 곁에는 기생물과 같은 천적도 존재한다. 인간사로 들여다보면 패거리를 조성해 왕따시키는 존재들, 악한 자들의 만행이 바로 기생(寄生)물이다. 한국에 왕따가 있다면, 일본에는 이지매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패거리를 조성해 누군가를 괴롭힌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는 하나 인간 세상은 힘으로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다. 인간은 다른 개체물과는 달리 언어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

대인은 천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함부로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패거리를 조성해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 갑질이나 왕따 따위는 더더욱 안중에도 없다. 혼자서는 자생할 수 없는 소인은 동료의 힘을 빌려 지탱해보려는 얄팍한 만행을 저지른다. 학생들의 집단폭력도 어쩌면 어른으로부터 전염된 행동이 아닐까? 내년 총선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정치계 또한 상대방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난이나 모욕하는 횡포, 또한 왕따와 다를 바 없다. 국민을 위한 국민을 향한 애민정신과 애민정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표를 얻기 위해 패거리를 조성하고 편을 가르는 누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왕따가 후일 국가적으로 이어지면 고립이 된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인해 한국인의 감정의 수위가 높아지는 요즘 국가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국가나 개인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때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화가 집단폭력으로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뉴스를 볼 때, 일본에서 경험한 이지매가 스쳐 간다.

일본은 소그룹 문화가 발달하여 대부분 그룹으로 활동한다. 그날은 회원들의 요구로 특별히 히로세 마리코 상 집에서 김치 만들기를 하던 날이다. 주인 히로세 마리코 상이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중 한 명을 가리키며 “あなた 誰? 당신 누구?”우리 멤버도 아닌데 왜 참석했냐며 호통을 치더니 빨리 나가라고 했다. 지켜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하며 굽실거리다가 돌아갔다. 뒷모습이 꼭 옆집 아지매 같았다. 속으로 얼마나 김치를 만들어보고 싶었으면 저토록 모욕을 당하고 가는 걸까? 혹시 한국계는 아닐까?

미야자키에서 4년간 살고 캐나다에서 3년 가까이 살다가 요코하마로 이사를 왔다. 그때 딸이 초등학생이었다. 재주가 많은 아이는 학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스피치대회와 육상대회에 나가 일본 아이들을 제치고 1등을 했고, 붓글씨와 공부도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반 친구 0000가 자꾸 째려보며 괴롭힌다며 토로했다. 그때 셋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힘들어하던 나는 “네가 얼마나 바보처럼 보였으며 그러겠느냐”며 아이를 혼내줬다. 어디 가나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잘 적응하는 아이라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오자마자 무조건 죄송하다며 90도로 고개 숙이기를 반복했다. 이야기인즉 괴롭힌다는 아이가 오늘 딸애 실내화에 압정을 넣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아이가 쓰는 학용품 함에 벌레 같은 것을 잡아넣고 했던 모양이다. 딸애는 이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학교 갈 때마다 불평했다.

2년 후 우리는 동경 근처 사이타마현 이화학연구소 연구원 숙소에서 살았다. 근심 걱정으로 가득했던 아이는 배구부에 들어가 열심히 운동하며 예전의 씩씩했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왕따니 이지매니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애꿎게 아이만 나무랐다. 왕따는 그룹으로 이루어지지만 이지매는 혼자서도 가능하다. 어릴 때 철없이 시작한 왕따문화가 후일 고립문화를 초래하므로 근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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