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길은 함께 가자
힘든 길은 함께 가자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9.08.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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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아들이 주저 없이 앞장서서 풀숲을 헤친다. 우리 가족 열 명은 앞장선 둘째 아들을 믿고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나라도 아닌 미국의 영토 사이판에서 지도 한 장을 들고 감히 찾아 나선 곳은 올드 맨 바이더 씨 (Old man by the sea) 라는 해변이다.

해변으로 가는 숲길은 폭풍이 쓸고 간 후 인적이 뜸하여 길이 희미해진 지 오래인 듯 보였다. 제멋대로 자란 풀들과 이리저리 뒤엉긴 나무들이 발에 걸리고, 갑자기 쏟아진 비로 인해 숲이 미끄러워 넘어지기 일쑤였다. 우리 부부는 행여 손주들이 넘어질까 손을 꼭 잡고, 며느리와 아들은 도시락을 비롯한 간식의 무게를 견디느라 힘들어 보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힘들지? 조심해라.' 서로 격려하고 재갈재갈 지껄이며 곧 나타날 멋진 해변의 기대로 거친 숲을 헤쳤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험한 길을 오르락내리락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모두 무사하게 30여 분을 헤매어 숲 속을 빠져나왔다.

해변엔 야자수가 쓰러지고 여기저기 플라스틱 물병과 주인 잃은 신발들이 널브러져 수년 전 밀려왔던 사이판을 휩쓴 쓰나미의 흔적들이 모래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올드 맨 바이더 씨는 사이판의 유명한 새 섬에서 남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바위에는 차모로족 선조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 접근하면 바닷물결이 거칠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해변엔 노인의 얼굴 옆모습과 너무도 닮은 올드맨 바위가 바다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길이 험하여 원주민들도 자주 드나들지 않는 곳이라선 지 그날은 오로지 우리 가족이 바다의 주인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해변에서 파도의 노랫소리와, 바위에 둥지를 튼 하얀 갈매기 부부를 벗 삼고, 가끔씩 밀려와 행복한 대화를 들으려 기웃거리는 파도도 어울려 함께 행복한 하루를 즐겼다.

찰랑거리는 파도에 발을 담갔다. 힘들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감사와,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너무도 흐뭇하여 가슴이 뭉클했다. 낯선 나라에서 탐험수준의 숲을 헤쳐 나오며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다칠까 두려웠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정글 같은 숲 속을 무사하게 헤치고 아름다운 해변에서 멋진 여행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 너무도 가슴이 행복에 젖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행동에 옮길 때에 혼자보다는 함께하면 힘이 덜 들고 용기가 생기며 일의 능률을 극대화시킨다. 첨단 과학의 힘도,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신비도 혼자의 힘이 아닌 함께 이루어낸 결과이다. 물론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한다면 실패와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양보와 배려와 협력이 잘 이루어진다면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은 것이 함께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에 더하여 `힘든 길은 함께 가자'는 말을 보태고 싶다. 도저히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곳을 다녀오며 `함께'의 힘이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바쁜 핑계로 가족 간에 얼굴 보기 힘든 시대이다. 대화의 단절로 무관심하고 정이 사라져 가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각자의 바쁜 일상을 접어두고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서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애틋한 정을 쌓는 마음의 여유가 아쉽다. 낯선 나라에서 두려움을 떨치고 힘들 때 서로를 배려하고 다독이며 험지 여행을 한 우리 가족은 더 끈끈하고 도타운 정으로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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